법복 벗고 경영 일선으로…ICT업계, 줄줄이 법조인 영입
법조계 출신 경영인 영입 두드러져…대관 경험·법률지식 갖춘 인물 선호
신사업 확장·사법 리스크 등에 역할 커져…정부 규제 대응·사업 전략 수립
SK텔레콤·KT, 판·검사 출신 경영진 '전진배치'…게임업계도 앞다퉈 영입
카카오 준신위원장에 김소영 전 대법관…준법·윤리경영 기틀 구축 온힘
2025-01-14 이태민 기자
매일일보 = 이태민 기자 |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들이 법조인 출신 인사들을 고위 임원으로 줄줄이 영입하고 있다. 최근 정부의 기업 규제가 늘고 있는 가운데 신사업 확장이 본격화되면서 리스크 관리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법조인 출신에 대한 기업들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법무 뿐 아니라 최고경영자(CEO)와 같은 C레벨 임원 영입이 늘고 있다. 과거에는 판·검사 출신을 전관 등 목적으로 영입했다면 지금은 풍부한 대관 경험과 법률 지식을 갖춘 법조인을 선호하는 추세다.
실제 주요 ICT 기업들의 올해 첫 조직개편 및 임원인사를 살펴본 결과 법조인 출신 인사 영입 및 승진이 예년보다 두드러졌다.
SK텔레콤은 지난달 부장판사 출신인 정재헌 SK스퀘어 투자지원센터장 겸 SKT 변화추진1담당(사법연수원 29기)을 대외협력담당(사장)으로 임명했다. 정 사장은 이번에 신설된 대외협력담당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ESG)·기업홍보(CR)·홍보(PR) 기능을 총괄하며 AI 및 글로벌 사업 확장을 지원한다. 그는 2019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뒤 2020년 SK텔레콤 법무2그룹장을 맡으며 입사했다. 2021년 뉴 비즈법무그룹장을 지낸 뒤 SK스퀘어 법무담당 겸 투자지원센터장으로 활동해 왔다.
KT는 법무실장으로 검사 출신 변호사인 이용복 부사장(사법연수원 18기)을 영입했다. 이 부사장은 회사의 다양한 법적 이슈 조정·대응을 담당하며 그룹사의 경영·사업리스크 관리 기능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 부사장은 1992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검사로 재직했으며, 이후 변호사로서 다양한 민·형사 사건을 담당했다. 그가 높은 법적 리스크 대응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만큼 탁월한 역량을 발휘할 것으로 회사는 전망했다.
최근 내부 쇄신 작업에 속도를 내는 중인 카카오도 법조인 영입에 불을 켜고 있다. 카카오는 지난해 11월 관계사의 준법·윤리경영을 감시할 외부 감시기구인 '준법과 신뢰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김소영 전 대법관(사법연수원 19기)을 위촉했다. 여성 첫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김 위원장은 공정거래, 자본시장 분야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카카오 관계사의 준법 경영 실태를 점검하고, 내부 경영 시스템을 개선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동안 개발자 출신을 요직에 앉혀 왔던 게임업계도 법조인 출신 인사 영입을 늘리고 있다.
넷마블은 지난 3일 신임 각자 대표에 김병규(사법연수원 38기) 경영기획담당 임원(부사장)을 내정했다. 김 부사장은 법무법인 서정과 삼성물산 법무팀을 거쳐 2015년 넷마블에 합류, 경영정책실장과 경영정책상무 등을 역임했다. 그는 넷마블 재직 기간 동안 전략기획과 법무, 정책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엔씨소프트도 지난달 변호사 출신인 박병무 VIG파트너스 대표(사법연수원 15기)를 공동대표 후보자로 내정했다. 박 내정자가 갖춘 기업 경영·전략·투자 관련 경험을 높이 샀다는 분석이다. 그는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시작으로 로커스홀딩스(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 대표, 뉴브리지캐피탈 대표, 하나로텔레콤 대표를 역임했다. 넷마블 인수와 합병 등에도 직접 나선 이력이 있다.
지난해 2월 라인게임즈의 수장이 된 박성민(사법연수원 39기) 대표 역시 판사 출신이다. 2022년 법복을 벗고 라인게임즈에 리스크관리실장으로 합류, 대외정책·퍼블리싱·계약 사항 검토 등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을 담당했다. 취임 직후 본인의 리스크 관리 능력을 발휘, 자회사 직원 권고사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행했다. 또 라인게임즈가 진행해 온 코스닥 상장 준비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처럼 ICT 기업들의 법조인 영입이 활발한 이유에 대해선 정부 규제 등 돌발적인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시각이 압도적이다. 신산업이라는 업계 특성상 회사 이미지 제고를 위해선 전방위적인 리스크 관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규제산업 중 하나로 꼽히는 통신업계는 물론, 게임업계는 올해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를 비롯한 ‘메타버스 게임산업법 적용', '웹보드 게임 일몰 규제' 등 각종 규제 시행이 예고돼 있다. 플랫폼업계 역시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온플법)' 시행을 앞두고 긴장하고 있다.
KT와 카카오의 경우 지난해 사법리스크로 홍역을 치르며 대내외 리스크 해소와 내부 조직 정비가 기업의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업계는 법조인 출신 인사를 영입, 법률을 토대로 전략적 판단을 수행하면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규제까지 예측해 사업 방향성을 모색하겠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사업 확장에 따른 성장과 신기술 약진 등 시장 변화에 따라 정부도 새로운 규제 방식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상황"이라며 "정부 규제가 주요 사업의 핵심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법조인 출신 C레벨 임원은 더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