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사회가 가정을 낳는다

2025-01-17     권한일 기자
권한일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좋은 가정이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식의 표어가 사방팔방에서 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출산율이 곤두박질친 현 세태에 빗대어 보면 앞뒤가 뒤바뀐 말이 아닌가 싶다.

필자 주변에 즐비한 비혼주의자와 딩크족(맞벌이 무자녀 가정)들은 "이런 세상에서 자식을 낳아서 기를 생각만 해도 속이 답답하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현재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들의 말에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다. 실상을 목도하고 있어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교육 경쟁은 유아기 때부터 점화된다. 이후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정점에 이른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경쟁심이 팽배해 있어 부모들은 '내 자식이 또래들보다 뒤처져선 안 된다'는 조급함과 위기의식을 품고 산다. "연봉의 몇 퍼센트를 자녀한테 투자하느냐가 자녀의 미래를 결정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만연한 게 현실이다. '최저 출산율 또 경신'이라는 국가적인 이슈가 들린 지도 어느덧 10여 년째다. 가임여성 한 명당 출생아 수(합계출산율)는 2015년부터 뚝뚝 떨어지더니 0.78명 수준까지 왔다. 분명 국가적인 위기다. 국제 사회에선 '국가 소멸 경고'까지 하고 나섰다. 지난달 미국 뉴욕타임즈는 '한국은 사라지고 있나?(Is South Korea Disappearing?)'라는 칼럼을 통해 한국의 저출산 추세가 흑사병으로 인구가 급감했던 14세기 유럽보다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앞서 테슬라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는 한국의 출산율을 두고 "3세대 뒤엔 인구가 현재의 6%에 그칠 것"이라며 일침을 가했다. 정부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매년 45~50조원씩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출산율은 답보는커녕, 뒷걸음질만 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그랬고 윤석열 정부도 그렇게 가고 있다.  밑 빠진 독에 돈 붓기가 따로 없다. 더 큰 문제는 그저 돈만 쏟고 원인과 해법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점이다. 집값, 보육 환경, 사교육, 경력 단절 등 숱한 이슈가 도마 위에 올라 있다. 급기야 일부 정치인들은 인기 TV프로그램을 저격하기에 이르렀다. <MBC 나혼자산다>를 향해 "혼자 사는 게 더 행복한 것으로 인식된다", <채널A 금쪽같은 내 새끼>를 두고 "육아의 어려움을 강조한다"면서 출산과 결혼에 부정적인 미디어 프로그램을 비판하는가 하면 반려동물 문화가 출산율 후퇴와 연관돼 있다는 견해를 드러내 한바탕 논란이 불거졌다. 또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고대 로마나 오스만제국에서 결혼 적령기를 넘긴 미혼자에 부과한 '독신세(獨身稅)'를 도입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견해로 찬반 논쟁이 일기도 했다.  그만큼 인구 감소를 둘러싼 전국민적인 문제의식이 커졌다는 방증이자, 꿈쩍도 하지 않는 출산율로 인해 타들어가는 정치인과 국민들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말 해법이 없을까. 고민을 거듭해 떠오른 생각들은 현실이라는 한계에 봉착한다. 다만 앞서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정말 과하다 싶을 정도'로 국가가 지원해야 주저앉았던 지표가 꿈틀대는 게 확인될 듯하다. 프랑스·독일·스웨덴이 그랬고 요즘 헝가리가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한민국에서 '내 자식을 마음 편히 낳아 키울 만하다'라는 인식이 보편화 되게끔 하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 한다. 좋은 사회가 가정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