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불릴 때 아냐”…시중자금 역대급 늘었는데 '돈맥경화'
시중자금 2년 만에 최대폭 증가...안전자산 쏠림
펀드에 돈 몰리고 투자 대기성 자금 수요 급증
2025-01-17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시중에 풀린 돈이 한 달 만에 무려 35조원 넘게 늘었다. 6개월 연속 상승세이자 2년 만에 최대 증가폭이다. 시중 자금은 늘어나는데 막상 돌지는 않고 있다. 이른바 '돈맥경화'다. 위험회피 심리가 강해지며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쏠리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1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11월 통화 및 유동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M2(광의통화, 평잔)는 3894조9000억원으로 전월(3859조6000억원)에 비해 35조3000억원 증가했다. 전월 대비 증가율은 0.9%로 2021년 11월 52조7000억원, 1.5% 증가한 이후 2년 만에 최대 증가다.
M2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등 협의통화(M1)에 머니마켓펀드(MMF),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수익증권, 양도성예금증서(CD), 환매조건부채권(RP) 등 금융상품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통화 지표다. 주로 시중에 풀린 통화량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한은 관계자는 "M2는 파생형·채권형 펀드가 증가세를 지속하고 주식형 펀드도 증가 전환하면서 수익증권을 중심으로 늘었다면서 "이에 더해 금리 변동성 확대에 따른 자금의 단기운용 유인이 커지면서 대기성 자금을 일시적으로 파킹하는 MMF에 자금이 몰렸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경기 불안감에 PF 부실 우려, 지정학적 리스크 까지 더해지며 투자자들의 뭉칫돈은 안전자산으로 쏠리고 있다. 최근엔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의 안전자산 투자성향이 짙어지고 있다.
코스콤CHECK에 따르면 연초 이후 개인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ETF는 삼성자산운용의 'KODEX Top5Plus TR'로 모두 7867억원이 새로 유입됐다.
이 상품은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시가총액 상위 5개 종목과 시가총액이 크면서 동시에 배당수익률이 높은 5개 종목에 투자한다. 포트폴리오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에 각각 23%의 비중으로 담고 있다. 이 외에 네이버(9.44%), 포스코홀딩스(8.86%), 현대차(8.74%) 등도 포함돼 있다. 해당 ETF는 2019년 1월 상장 이후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이다. 분배금 지급 없이 배당을 재투자하는 토털리턴(TR) 투자방식이 특징이다.
마땅히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개인투자자가 우량주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안전자산 투자를 확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렇다 보니 대기자금을 넣어두는 파킹형 상품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대표적 파킹형 ETF로 꼽히는 'KODEX CD 금리액티브' 'TIGER CD금리투자KIS ETF'의 순자산은 올해 들어서만 각각 6091억원, 4891억원이 늘었다.
한편 안전자산 투자는 비단 ETF 등 주식시장에서만이 아니다. 채권시장에서도 우량채에만 자금이 몰리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AA급 이상의 대기업 계열사 채권에 자금이 몰리는 것과 달리 A급 이하 기업은 공모채 시장에 명함조차 못 내미는 상황이다. 부동산 침체, 고금리가 증시·채권 시장에 어떤 타격을 줄 것인지 투자자들의 경계감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해 12월 말 기준 ETF 전체 순자산은 경기침체, PF발 우려감에 전월 대비 3629억원 줄어든 121조원으로 집계됐다.
연초 시장을 주도하는 뚜렷한 테마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고도 사상 최대치를 연일 경신하며 76조원에 육박했다. 금리 매력이 두드러지지 않음에도 증가한 CMA는 갈 곳 잃은 대기성 자금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CMA 잔고는 지난 8일 기준 75조9918억원을 기록했다. 계절적으로 변동성이 커지는 9~10월, 고금리·고유가·강달러 삼중고에 전쟁 등 지정학적 이슈로 투자 수요가 급감한 저점(10월 11일) 63조1023억원과 비교하면 3달 만에 11조8895억원(18.55%)이나 불어난 수치다. CMA 잔고 증가가 주목받는 이유는 증시를 누른 요소들이 여전하고 금리 매력이 예전보다 크지 않은 탓이다.
지난해 대형 증권사들은 2022년 하반기부터 경보가 울린 PF 대출 등 긴급 자금 마련 등을 위해 공격적으로 발행어음을 발행했고 이는 발행어음형 CMA 금리 인상으로 이어졌다. 당시 5%대 특판 CMA 등은 은행 예적금은 물론 저축은행 상품과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었지만 현재는 사라졌다. 반면 은행과 저축은행은 4%대부터 최고 14%대 특판 예적금을 선보이며 금리 매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럼에도 CMA 잔고가 증가 추세로 전환한 것은 지난해 연말 산타랠리부터다. 증시는 기대감을 선반영하는 만큼 대기성 자금이 몰린다는 분석이다. CMA 유형별 잔고도 발행어음형뿐 아니라 환매조건부채권(RP)형, 머니마켓펀드(MMF)형, 마니마켓랩(MMW)형 등 전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CMA는 금리 메리트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으므로 잠깐 머무르기 위한 자금이 대부분이라고 봐야 한다"며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올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