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80년대생’ 오너가 일원의 공적

2025-01-21     이상래 기자
이상래

매일일보 = 이상래 기자  |  중국 역사서 사기(史記)에서 열전은 ‘백이열전’으로 시작한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인물 서사 위주의 다른 열전과 달리 ‘백이열전’에서만은 자신의 논평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백이열전에서 사마천은 중국의 전설적인 ‘태평성대(太平聖代)’ 요순시대를 소개한다.

“요임금이 제위를 순임금에게 물려주고, 순임금이 다시 우에게 물려줬다. 이때 제후들 모두 우를 추천했으므로 (순임금은) 그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수십년간 우에게 일을 맡겨 공적을 세우게 한 뒤 정사를 맡겼다. 이는 천하(天下下载)가 소중한 그릇이고 제왕은 가장 높은 통치자인 만큼 천하를 물려준다는 것이 이처럼 어려운 것임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최근 국내 주요 대기업에서 1980년대생의 오너가(家) 일원들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1989년생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은 이번 2024년 정기임원 인사에서 ‘최연소 임원’의 타이틀을 달고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최 본부장은 SK그룹의 핵심 미래 사업 중 하나인 바이오 부문 육성에 나서고 있다. 1983년생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2022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주요 경제인 행사에 한화그룹을 대표해 참석해 사실상 총수 역할을 맡고 있다. 김 부회장은 현재 방산, 조선, 태양광 등의 사업을 이끌고 있다. 여기에 배터리·수소·우주 등 장기적인 한화의 미래 사업 육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1982년생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은 2024년 사장단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정 부회장은 HD현대의 수소,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운항, 전동화 기술 등 신성장 동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올해 초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CES2024)’ 국내 유일 기조연설자로 무대에 올랐다. 1984년생 이규호 코오롱 부회장도 2024년 정기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 부회장은 코오롱 지주사의 전략부문 대표이사도 맡아 그룹 전체 체질 개선과 미래 신사업 전환을 주도한다. 이들 외에도 1986년생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전무), 1989년생 김동선 한화그룹 부회장 등 ‘80년대생’ 오너가들이 대기업 전면에 나서고 있다. 사마천은 ‘천하는 소중한 그릇’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하는 이들 대기업들도 소중한 그릇이다. 대기업을 이끄는 ‘미래’ 리더가 제왕처럼 어려운 자리인 것도 마찬가지다. 유명세, 존재감 등이 실체적 ‘공적’을 대신할 수 없다. 그러기에는 우리 모두가 짊어져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