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천하람 개혁신당 공동창당위원장이 <매일일보>와 인터뷰에서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의 차이점에 대해 개혁신당은 "왕을 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왕(윤석열 대통령)'의 눈치를 보느라 정당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는 점을 저격한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에서 방송 카메라에 선명히 잡힌 윤 대통령 손바닥의 '임금 왕(王)'자가 어쩌면 지금의 비판과 사태를 예견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왕에 비유되거나 영부인이 황후 등 전근대적 왕정 체제 용어가 나오는 것은 권력 행사가 민주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포함하고 있다. 그만큼 국가 의사 결정에 국민 의사가 반영되지 않고 사적 혹은 특정 세력에게 쏠려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윤 대통령에게 의견을 표명하고 항의하던 국회의원이 대통령실 경호처 직원들에 의해 입이 막히고 들려서 끌려 나간 장면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또 야당 대표 피습 이후 출입 기자들의 야당 대표에 대한 접근이 부분적으로 제한되는 점 역시 민주공화국이라는 우리의 헌법 가치를 모두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생기게 한다.
민주공화국 정당이 특정 인물 보호에만 매진하는 사이 잊혀지는 것은 국민이다. 4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이러한 모습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더 좋은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정작 국민이 소외되는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지난주 여야가 같은 날 저출생 대책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곧바로 "생색 내기"라고 지적했다. 그만큼 현실과 동떨어진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앞으로도 여야는 총선 공약을 연이어 발표할 테지만, 큰 기대가 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건드려야 할 문제에 대한 대책은 부실하다. 당장 눈 앞에 닥친 경제 침체, 가계 부채, 기업 부채, 고물가 문제는 이전부터 국민을 괴롭히고 있지만 정치권은 손을 놓고 있다시피 했다.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어떠한 문제를 해결할 인재를 품고 있는지 묻고 싶다.
정치인들은 매번 선거 때마다 해당 선거가 나라의 국운을 결정 짓는다고 호소한다. 맞는 말이다. 선출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에 따라 나라 운영과 운명이 좌우된다. 18세기는 영조와 정조 재위 기간을 거치며 조선시대 르네상스라고까지 불리었지만, 19세기 순조 때부터 한반도는 하락의 길로 들어섰다.
일제 강점기와 치열한 남북 간 전쟁을 거치며 다시 나라가 일어서는데 20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한번의 무능한 국왕의 즉위, 한번의 잘못된 선택이 나라가 몰락의 길을 갈지 말지를 결정 짓는다.
지금처럼 지도자의 신체와 심기 경호에만 위해 열을 올리는 참모들과 정치인들이 있는 이상 대한민국의 몰락은 19세기보다 더 빠를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왕'을 갈아 치우기는 쉽지 않지만, '정치'를 바꿀 수 있는 기회는 4년 마다 한번씩 꼭 돌아온다는 점이다. 나라의 몰락이 눈 앞에 다가와 있는 상황에서 치러지는 이번 선거가 진짜 나라의 국운을 결정 짓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