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상반기 실적전망 암울…부동산PF도 홍콩 ELS도 ‘악화일로’
영업이익 '1조 클럽' 실종...올해도 가시밭길 예고 실적 방어 시급한데...홍콩 ELS 쓰나미 등 악재만
2024-01-24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지난해 실적악화에 신음했던 증권가가 해가 바뀌었음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4분기 실적을 결산 중이지만, 고금리 기조에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여파로 지난해 영업이익 1조원을 넘긴 증권사가 단 한 곳도 등장하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와 관련, 금융당국의 전수조사 대상이 된 증권사들은 대응책 마련까지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19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 7곳(한국금융지주·삼성증권·메리츠증권·NH투자증권·미래에셋증권·키움증권·대신증권) 가운데 지난해 영업이익 추정치가 1조원이 넘는 증권사는 한 곳도 없었다. 증권사 7곳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추정치 합산은 총 741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2년 4분기(5086억원)보다는 45.8% 늘어난 수준이다. 하지만 1조를 넘어섰던 직전 분기인 지난해 3분기(1조1812억원)보다는 37.2% 줄어든 규모다. 한국금융지주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추정치가 1720억원으로 집계돼 직전 분기보다 20% 가량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한국금융지주는 한국투자증권의 모회사다. 주력 계열사인 증권 수익 비중이 절반 이상에서 80%까지 차지한다. 삼성증권 역시 9000억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달성했으나 직전 분기 대비 20% 이상 영업익이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22년 유일하게 ‘1조 클럽’에 가입했던 메리츠증권도 부동산 PF 부진 등의 여파로 영업이익 추정치가 8000억원대로 주저앉았다. 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은 7000억원대에 그쳤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난해 4분기에는 여전한 고금리 기조와 투자 심리마저 위축되면서 믿는 구석이던 주식 거래 관련 실적도 부진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증시 예탁금은 지난해 총 49조9700억 원으로 전년(56조7200억 원)으로 11.90% 감소했다. 증시 대기 자금으로 불리는 예탁금이 줄어든 것은 투자 수요가 감소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4분기 전체 일평균 거래대금은 16조5000억 원으로 3분기보다 28.6% 줄었다. PF 등 국내외 부동산 이슈도 직격탄이 됐다. 조아해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태영건설 관련 증권사의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는 1조1000억원이고 익스포저를 보유한 곳이 대부분 대형사”라고 분석했다. 이어 “금융당국이 부실 PF에 대해 시장원칙에 따른 구조조정 필요성을 언급한 점과 국내뿐 아니라 해외 대체투자 자산 재평가도 예정돼 있다는 점에서 증권사들이 작년 4분기 실적에 관련 충당금을 인식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은 올해 하반기까지 이어질 거란 관측이 나온다. 증권사 투자은행(IB) 부문의 수익성과 자산건전성은 여전히 부동산금융 시장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중소형사는 국내 부동산 PF에 대한 손실 부담이, 대형사는 해외 부동산 투자에 따른 손실 부담이 손익과 재무구조에 악재가 될 전망이다. 한신평 관계자는 “향후 고금리 상황이 장기화하는 등 금융시장 환경이 우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투자중개 부문 실적에 유의미한 회복은 어려울 수 있다”며 “금리로 인해 개인투자자의 투자심리가 위축되면 증권사의 수수료 수익 확보도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증권사들이 갈수록 뒷걸음질하는 실적을 방어하는 데 여념 없는 가운데 홍콩 ELS 사태도 예상치 못했던 악재로 부상했다. 금융감독원이 대규모 원금 손실이 예상되는 홍콩 ELS 사태와 관련, 판매 증권사를 대상으로 전수 조사에 돌입하면서다. 현장 검사 대상으로 지목된 증권사들은 자체 점검을 통해 각가지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금감원은 우선, 증권사 중 ELS 최다 판매사인 한국투자증권을 시작으로 릴레이 현장검사에 들어갔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 요구한 자료나 관련 데이터 등을 취합해 제출하고 있다"며 "분쟁 민원 사실 관계 등 사항들도 자체적으로 점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ELS 사태 외에도 조만간 발표될 랩·신탁 불법 자전거래 관련 징계 결과 등으로 증권가에 긴장감이 한껏 감돌고 있다"면서 "지난해 연이어 발생한 불공정거래와 금융사고로 내부통제·리스크관리가 화두가 된 상황에서, 증권사들은 금융당국의 집중 타깃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증권사들이 금리 인하 기대감에 따라 하반기부터 실적 개선 흐름을 보이는 '상저하고'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는 '상고하저' 흐름이었다면, 올해는 상반기까지 증시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 않고 태영건설 워크아웃에 따른 단기적인 PF 재정 부담 등이 더해지면서 어려움을 겪다가 하반기부터 여러 호재들이 기대를 충족시킬 것이라는 해석에서다. 한 금투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로 갈수록 2차전지 등 한 섹터 쏠림현상이 소멸하면서 전반적인 수익이 줄었으나, 올해는 증시가 저점인 것으로 판단되면 금리 인하 기대감과 함께 다시 투자 수요가 몰려 브로커리지 비중이 높은 증권사에서 호실적을 거둘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