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잠재성장률 0%' 눈앞…저출산·고령화 속 ‘식어가는 경제엔진’

기초체력 약해지며 성장 둔화...30년 전 일본 판박이 "정부 反시장적·포퓰리즘 정책이 성장 저해" 지적도

2024-01-25     이광표 기자
우리나라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이 꺼져가고 있다. 불과 20년 전 4%를 훌쩍 넘었던 잠재성장률은 곤두박질 중이고, 이제는 ‘0%대 성장 시대’를 걱정해야하는 상황이다. 

잠재성장률이란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최대한 성장할 수 있는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경제의 기초 체력을 나타낸다.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생산연령 감소, 부진한 노동시장 구조개혁, 각종 규제에 따른 기술혁신 지체 등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25일 OECD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12년 3.8%를 기록한 이후 올해 1.7%로 예측되기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하락했다.

급기야 OECD는 이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2030~2060년 한국의 잠재성장률 평균치는 0.8%를 기록할 거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미 지표상 드러나는 추세는 암울하다. OECD는 올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을 2.004%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2.025%에 이어 2년 연속 2%에 그친 것이다. 특히 한국과 주요 7개국(G7) 중 우리나라만 2012년 이후 매년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 뼈 아프다.
 
문제는 잠재성장률이 반등할 요인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잠재성장률은 노동과 자본의 생산성에 더해 신기술 개발, 경영 혁신 등을 나타내는 ‘총요소생산성’의 합으로 설명된다. 
 
저출산·고령화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노동 공급의 감소 폭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2022년 3674만명에서 2030년 3417만명, 2040년 2903만명으로 줄어든다. 2020년대에만 연평균 32만명, 2030년대에는 50만명씩 노동력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다. 자본의 생산성도 기대하기 힘든 수준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성숙기에 진입하면서 투자 둔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총요소생산성 역시 하락세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한국의 잠재성장률 5.1%에서 총요소생산성이 2.2%포인트를 차지했으나 2019∼2020년에는 잠재성장률 2.5%에서 총요소생산성의 기여도는 0.9%포인트로 대폭 쪼그라들었다.
 
잠재성장률 하락은 곧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012년 2.4%를 나타낸 뒤 2013년과 2014년 각각 3.2%로 반등했다가 2015년 2.8%로 하락했다. 이후 등락을 거듭하다 2019년 2.2%를 기록한 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0.7%로 떨어졌다. 이후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 유동성 증가에 힘입어 2021년 성장률이 4.1%로 상승했지만 2022년 2.6%, 지난해 1.4%를 나타내는 등 최근 들어 저성장 기조가 자리 잡고 있다. 
 
OECD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경제 전망에서 2025년 성장률이 2024년보다 낮은 국가는 38개 회원국 한국과 멕시코 두 곳뿐이다. 2025년 기준금리를 연 2.50%로 현 수준보다 1%포인트 인하할 것으로 보면서도 성장률을 낮춰 잡은 것이다. 
 
정부도 잠재성장률의 하락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우리 경제는 잠재성장률이 지속 하락하고 있다”며 “올해가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출범 후 1년 7개월이 지난 지금, 경제 성적표는 초라하다. 정부는 3대 개혁을 내걸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에서도 노동 부문은 “올해 상반기 중 ‘이중구조 개선대책’을 마련하겠다”고만 나타났을 뿐 구체적 로드맵은 없었다. 연금 부문 역시 관계부처 협의체를 통해 다층적 노후소득 개편방안을 논의하겠다는 선언적 내용만 들어가는 데 그쳤다. 
 
오히려 개혁과 거리가 먼 ‘반(反)시장적’ 정책으로 논란을 키웠다. 대통령의 ‘돈 잔치’ 발언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자유시장을 복원하겠다고 말해놓고 오히려 과도한 개입을 해서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한편 한국의 잠재성장률 급락세가 약 30년 전부터 하강 곡선을 그린 일본 경제와 유사하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고령화, 과잉 부채 등 일본 경제 성장률을 떨어뜨렸던 악재들은 한국에도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 구조적으로 일본과 비슷한 약점을 안고 있다. IBK경제연구소는 ‘한·일 저성장 비교’ 보고서에서 한국이 30년 전 일본이 겪었던 고령화, 민간의 과잉부채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가계부채와 민간부채(가계+기업)의 경우 일본의 버블 정점기보다 한국의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일본의 1989년 자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1.4%였던 반면, 지난해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17.2%를 기록했다. 민간부채의 경우 일본은 1994년 214.2%로 정점을 찍었고, 한국은 지난해 225.6%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