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83만 사업장 공포심리 확산…산업계 충격 ‘일파만파’
중처법 실효성 떨어진다는 지적과 유예 요구사항 지켜도 불발 중소 제조업·건설업 현장서 범법자 양산과 실직자 발생도 걱정
매일일보 = 신승엽 기자 |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기업들의 거센 반발에도 국회를 통과하며, 중소 건설·제조업 현장에 공포감을 키우고 있다.
중처법은 사업장 내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에게도 법적 책임을 묻는 제도다. 안전관리에 유의할 경우 경영자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안전관리 규정을 모두 준수하기 어렵다는 호소가 나온다.
중처법은 산업재해와 시민재해를 포함한다. 산업재해는 사망자가 1명 이상 또는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나오거나,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 중독 등 직업성 빌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가리킨다. 시민재해란 특정 원료 및 제조물, 설계, 관리 등의 결함으로 사망자 1명 이상,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10명 이상,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 10명 이상이 발생한 경우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처법이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됐다. 그간 중소기업계에서는 제도 도입을 유예해달라고 호소했지만, 결국 국회의 문턱에서 좌절됐다. 총선을 앞두고 ‘편가르기’에 집중한 정치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정부와 여당도 중처법 유예의 국회 통과를 요청했지만, 허사가 됐다.
현재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이 해당 제도를 준수하기에 역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번 중처법 유예 대상인 기업은 83만7000여개에 달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모두 포함해 5인 이상이 종사하는 사업장은 모두 제도에 포함된다는 뜻이다. 상대적으로 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중소 제조업과 건설업의 경영자 및 대표자는 모두 산업안전보건법과 중처법을 준수해야 한다.
정부는 중처법 유예를 위해 경영계와의 협의를 바탕으로 야당 측의 요구조건 등을 수용키로 한 바 있다. 정부는 지난 2년간 50인 미만 기업 83만7000여개의 절반 수준인 45만개소에 대해 컨설팅・교육・기술지도 등을 지원했다. 다만 지원책이 전반적으로 충분한 대비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향후 2년간 50인 미만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집중 지원하는 내용의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 지원대책’도 마련・발표했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 역시 추가 유예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받았다.
중소기업계는 노동자 안전관리 강화라는 취지에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제도의 실효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제도의 보완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는 449건, 459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4건, 51명 감소했다. 50인 이상에서는 사망자가 10명 줄었으나 사고는 8건 증가했다. 오히려 법 적용이 유예된 50인 미만에서 더 많이 줄었다. 사망 41명, 사고 42건이 각각 감소했다.
근로복지공단의 보상 승인 기준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도출됐다. 작년 1~9월 50인 이상에선 불과 3명 감소에 그쳤다. 50인 미만에서 39명이 줄었고, 법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에서 51명이나 감소했다. 근로자의 숫자 절대치에서 차이가 존재하지만, 50인 미만 사업장도 안전관리에 힘쓰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다.
경기도 군포시의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데, 노동자 사고가 발생할 경우 인력 부족이 심화된다는 이유로 사고 예방에 힘쓰고 있다”면서 “특히 50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일손이 모자를 때, 경영자까지 생산라인에 참여한다. 강제력을 가진 처벌 제도가 강화된 것은 예측하지 못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저 경영자 때리기에 불과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상대적으로 중대재해 위험이 적은 벤처기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벤처기업계 관계자는 “벤처기업의 평균종업원수는 25.1명으로 규모로 중처법을 관리할 수 있는 인력을 채용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아무리 사업주가 신경을 쓴다고 하더라도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였다”면서 “만약 중처법을 위반해 최대 징역형을 받는 다면 회사가 문을 닫고 회사에 고용된 근로자들이 실직하는 악순환을 겪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건설업계의 호소도 확대됐다. 건설업계는 공사비 50억원 미만의 현장까지 중처법이 적용되는 것은 현장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소라고 밝혔다. 99%에 달하는 중소건설기업은 형사처벌을 면하기 어려워질 뿐 아니라, 제도를 100% 이행하지 못하고 범법자로 전락한다는 입장이다. 앞선 중소제조업과 마찬가지로 경영자의 형사처벌은 기업 폐쇄와 직원들의 실직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현장의 인식도 부족하다. 제도의 실제 내용은 모르고 생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제도의 유예가 불발됨에 따라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을 인식하지 못한 현장 종사자들은 모두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경기도 시흥시의 50인 미만 중소기업 임원은 “중처법은 이름만 알고, 구체적인 의무사항까지는 모른다”면서 “(제도의 적용 대상과 의무사항 등을 청취한 이후)당장의 생계가 급한 직원들에게 제도를 준수하라고 강제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20인 이상 제조업이기 때문에 안전관리자를 채용하라는 것으로 보이는데, 고정비가 올라 더 이상 채용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