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정쟁에 멍든 중소기업·소상공인 ‘중처법 쇼크’
영세 사업장 혼란 심화 언급에도 유예 처리 무산 코로나發 경영위기 등 전후사정 고려 부족 지적
매일일보 = 신승엽 기자 |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유예가 무산되면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현장이 벼랑 끝에 몰렸다.
지난 25일 50인 미만 사업장 중처법 시행(1월 27일)을 앞둔 마지막 국회에서 여야 합의가 불발됐다. 당초 극적인 여야 합의를 위해 경제단체들은 마지막까지 중처법 유예의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하지만 야당과 노동계의 반발로 결국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현장에도 중처법이 적용됐다.
중소기업계는 꾸준히 중처법 유예를 주장했다. 아직 50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중처법을 감당하기 어렵고, 제도가 통과될 경우 중소기업을 넘어 소상공인들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5인 이상이 종사하는 소상공인·자영업자 현장에도 제도가 적용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생업 현장에 제도가 적용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처법은 결국 정쟁에서 후순위로 밀려났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열린 국회는 표심을 얻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며 “특히 지지세력을 견고히 쌓기 위한 전략을 최우선으로 삼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해당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한 정치권의 판단에 영세기업은 사지로 내몰렸다”면서 “중처법을 준수하지 못하는 경영자가 형사처벌 등을 받아 사업장 폐쇄 위기가 발생했을 때, 성실히 일하는 근로자들의 생계까지 정치권에서 모두 책임질 수 있는가. 오히려 경제위기를 부추기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제도 시행을 앞둔 시점 중처법 유예를 비판하기도 했다. 동네 빵집에서도 우려한다는 내용 반박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0인 미만 사업장에는 안전관리자 고용은 의무가 아니고, 동네 빵집 등 영세 소상공인·자영업자 사업장에서는 중대재해가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골자다.
앞선 안전관리자 주장에도 근거는 존재한다. 제조업, 임업, 하수·폐수 및 분뇨처리업, 폐기물 수집, 운반, 처리 및 원료재생업, 환경정화 및 복원업에 한해 20명 이상 50명 미만 사업장이 안전보건관리담당자 1명 이상을 선임하도록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됐다. 이외의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안전관리자나 보건관리자 배치 의무가 없다.
하지만 중소기업 현장의 이해를 처음부터 다시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대·중견기업 사업장을 찾아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급진적인 제도의 변화에 따라가기 위한 재원 및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50인 미만 현장에서 종사하지 않는 단체들의 비판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노동계에서는 중처법의 유예 불발을 환영하고 있다. 노동자 보호에 한 발 더 다가섰다고 주장한다. 노동계는 경영계와 반대되는 조사 결과를 근거로 삼는다. 다만 실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근로자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50인 미만 사업장, 특히 중소 제조업과 건설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부터 이어진 경제위기를 아직 벗어나지 못했고, 사업장 운영도 어려워 제도에 대응할 여력이 없었다”면서 “전후 사정은 확인하지 않고, 그저 제도의 목적만 관철시키려는 행위는 같은 국가에 사는 같은 국민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한편, 중처법 유예 논의는 내달 1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다시 언급될 예정이다. 현재 야당 측에서는 ‘산업안전보건청’ 신설을 요구조건으로 내세웠다. 반면, 여당은 공무원과 예산 확보 등을 이유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에 반대하고 있다. 정부는 중처법 유예를 위해 야당의 의견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