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건설 수주, 그룹사 물량 40% 육박... '착시현상' 주의보

작년 해외 수주 333억달러 중 3분의1, 대기업 계열사 물량 美 IRA법 영향…현지 반도체‧자동차 공장 등 91억달러 수주

2025-01-28     권영현 기자

매일일보 = 권영현 기자  |  2023년 해외건설 수주 규모가 4년 연속 300억달러(한화 약 40조원)를 넘겼지만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 공장 등 그룹 내 계열사 물량이 100억달러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해외건설통합정보서비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321개 건설사가 95개국에서 333억1000만달러를 수주했다. 이는 전년 대비 7.5% 늘어난 수준이다. 지난 2019년 223억달러까지 떨어진 해외 건설 수주액은 2020년 351억달러로 반등했고 2021년 306억달러, 2022년 310억달러, 2023년 333억1000만달러로 4년 연속 300억달러를 웃돌았다. 지난해 333억달러 중 미국 수주액이 99억8000만달러로 전체의 30%를 차지하며 1965년 통계를 낸 이후 처음으로 미국이 1위를 차지했다. 다만 이 중 88.5%(91억2000만달러)는 현대차와 삼성전자 등 국내 제조사의 현지 생산설비 공사 수주로 집계됐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 대응에 나선 국내 기업들이 IRA 보조금 혜택을 받기 위해 미국 현지 반도체‧자동차‧배터리 공장 설립에 나섰고 이를 건설 계열사에서 수주해 해외건설 수주액이 늘어난 셈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차가 미국 조지아주에 짓는 배터리 합작공장 L-JV 프로젝트(12억달러)와 S-JV프로젝트(17억5000만달러), 미국 현대차 공장 신축공장(6억7000만달러), 현대글로비스 공장 신축공사(1억7700만달러) 등을 수주했다. 미국 이외 국가의 계열사 공사까지 합치면 해외건설 수주액 중 계열사 물량이 100억달러를 넘는다. 삼성엔지닝어링은 2억1300만달러 규모의 베트남 삼성전기 ‘SEMV FCBGA' 증설공사와 1억8300만달러 규모의 말레이시아 삼성SDI 제2공장 증설공사를 수주했고, 삼성물산은 2억800만달러 규모의 중국 시안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신축공사 등을 짓기로 했다. 정부와 업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정부는 국내 건설사들이 미국 현지에서 쌓은 공사 실적을 바탕으로 향후 경쟁입찰 참여 조건을 충족할 수 있고 미국 내 경쟁력 잇는 공사비 산출이 가능해진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있다. 이에 더해 정부는 올해 해외건설 수주 목표를 400억달러로 잡았다. 또한 2027년까지 연간 해외건설 수주 500억달러 달성 및 4대 건설 강국 진입 목표를 세웠다. 반면 건설업계에선 국내 제조사의 해외공장 건설 프로젝트가 수의계약 형태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순수한 해외건설 수주 실적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한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액이 300억 달러를 넘겼지만 수주의 질이 좋다고 평가하긴 어렵다"며 "국내 건설사들의 정체된 수주능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올해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를 통한 지분 투자를 늘려, 무게중심을 도급에서 투자개발방식으로 옮기는 등 해외 수주 방식을 선진화한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