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배고픈 건설업계, SOC 애써 외면하는 속사정
2025-01-28 권한일 기자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차라리 안하는 게 낫다. 착공과 동시에 적자 끌어안고 시작하는 수준이다."
최근 유찰된 대형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책정된 공사비로 수지 타산을 따지다가 끝내 응찰하지 않은 한 건설사 관계자의 말이다. 주택 경기 침체로 보릿고개를 넘는 건설업계에 일감을 내주기 위해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올해 SOC 예산의 65% 수준인 12조4000억원을 조기 집행하겠다고 나섰지만, 연초 쏟아진 굵직굵직한 SOC 입찰 건들은 모조리 유찰되고 있다. 총공사비만 9936억원인 서울 대심도 빗물 배수 터널공사(강남역·광화문 등)를 비롯해 6169억원 규모 일산 킨텍스 제3전시장 공사 등 대형 프로젝트 외에도 서울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2공구 공사(3170억원)까지 1000억~3000억원대 공사비가 책정된 중대형 사업 총 8건에서도 시공을 맡겠다는 건설사가 없어 유찰됐다. 시공사 물망에 올랐지만, 최종 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업체들은 대형사를 비롯해 관급 토목 공사에 일가견이 있는 중견 건설사도 많았다. 한 불참업체 관계자는 "공고된 공사비는 표면적인 것일 뿐 경쟁 입찰을 거친 낙찰가는 기존 공사비보다 적어도 10%는 깎인다"면서 "시공 원가는 10%~20%씩 오르고 있지만 그나마 낫다는 관급공사마저 물가 인상분 이상은 절대 반영이 안해주는 구조"라고 귀띔했다. 불황이 길어지면서 완공 현장이 늘고 점차 시공 실적이 줄어드는 건설업계에선 최소한의 수익성만 나오더라도 입찰하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지만, 반대로 재무구조를 갉아먹는 손실이 뻔한 공사는 아예 배제한다는 원칙도 철저해지고 있다. 총사업비 관리제에 기반한 공사비 책정과 발주까지 2년 가량 소요되는 대형 공공사업들이 최근 급등한 자재값과 품질·안전관리 비용 등을 제대로 담기엔 역부족인 건 어쩌면 당연하다. 다만 이렇게 되면 공공사업 일감을 못 따내는 건설사들도 타격을 입지만 정부는 사업 지연에 따른 주민 불편과 피해를 고민해야 한다. 민간 건설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정부 주도의 안정적인 프로젝트들마저 손들고 나서는 건설사가 전무하다는 사실에 발주 기관은 물론 중앙 정부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 업계 분위기상 일부 대형사를 제외하면 여전히 민간 도급 사업보다 안정적인 공공공사에 무게추를 싣고 있고, 일감 확보에 대한 갈망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신년 주요 SOC 사업에서 유찰이 이어지는 이유에 대해 정부 차원의 깊이 있는 고민과 발 빠르고 유연한 대처가 시급한 시점이다. 정부는 위기의 건설업계를 위한 일방적인 SOC가 아닌, 국민 편익을 위한 시의적절한 사업이자 둔화된 경기 활성화를 위한 '윈윈 전략' 차원에서 공공사업들을 바라보고 적절한 공사비로 발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