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국가’ 꿈꾸는 日의 ‘전범국가’ 정체성

한중러, 대일 과거사 3각 압박…2차 대전 후 ‘무마된 역사’의 반란

2015-02-09     김경탁 기자
[매일일보]최근 국제사회에서 일본 과거사 문제를 놓고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양상은 “일본이 ‘보통국가’로의 변신을 꿈꾸는 과정에 ‘전범국가’라는 정체성을 백일하에 드러냈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지난해 연말, 미국 의회조사국(CRS) 연구원 출신의 래리 닉쉬 박사는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한 아베에게 1948년 도쿄 국제전범재판소 판결을 인정하는지 공개 질의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 최근 일본 집권세력 구성원들은 ‘인정 않는다’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다.일본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냉전시대가 이어지면서 자본-공산 양 진영의 체제경쟁 속에서 전범국가로서의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은 상태에서 평화 번영의 길을 걸어왔고, ‘무마된 역사’가 재론될 때는 돈으로 입을 틀어막는 전략을 반복해왔다.하지만 최근 들어 일본은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전의 위안부 만화전을 방해하거나 미국 버지니아주의 동해병기법 추진을 막기 위한 로비과정을 통해 이제 더 이상 돈으로 문제를 덮는 방식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 직면했다.상황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미국 주정부에 대한 협박식 로비가 통하지 않은 ‘동해병기법’ 문제이다. 일본대사관이 “동해병기법이 통과될 경우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해야할 것”이라는 협박을 했던 배경에는 13년 전 동일한 수법이 잘 통했던 경험이 있다.2차 대전 당시 일본군에 붙잡혀 강제노역 생활을 한 에드워드 잭퍼트씨는 최근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에서 “일본은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전쟁포로에 대한 공식 사과와 보상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무산시키려고 버지니아주에서와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고 증언했다.잭퍼트씨에 따르면 웨스트버지니아주 하원 운영위원회는 2001년 일본 정부로 하여금 2차 대전 당시 일본군 포로가 돼 비인간적 처우를 받았던 미국인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하라는 공동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지만 이듬해 본회의에 상정된 결의안은 계속 심의가 지연됐다.그 과정에 주미 일본대사관 소속 뉴욕총영사는 웨스트버지니아 주지사와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만일 결의안이 통과되면 웨스트버지니아와 일본 사이의 긍정적인 협력과 견고한 경제적 교류가 손상을 입을 수 있다”고 협박했다.잭퍼트씨는 “일본은 웨스트버지니아의 석탄과 철강을 불매하려 했고 이 경고는 성공적이어서 그 결과 상·하원 어느 쪽도 그 결의안을 다시 들여다보지 않았다”며 “일본 정부는 일제 때 역사를 옹호하고 전범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경제적 협박을 쓰는데 익숙해 있다”고 설명했다.10여년 전까지 통했던 일본의 협박전술이 통하지 않는 것은 피해 당사국인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 위상이 당시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 커보인다. 중국은 미국과 G2라는 이름으로 어깨를 견줄 정도로 성장했고 한국의 존재감도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중국은 연일 일본의 생화학전 대비 731부대의 인체실험이나 위안부 강제 동원 관련 증거 등을 제시하면서 일본이 ‘전범국가’로서 해소하지 못한 역사를 증명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고 일본과 우호적 입장의 러시아나 유럽 국가들을 최소한 중립으로 돌려세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지난 7일 러시아 소치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지역국가들이 화목하고 우호적으로 지내려면 (해당 국가들이) 반드시 정확한 역사관을 견지하고 전후 국제질서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같은 날열린 새해 첫 러-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소련 등 유럽국가들에 대한 나치세력의 침략과 중국 등 아시아 피해국 인민들에게 범한 일본 군국주의 엄중한 죄행이 결코 잊혀서는 안 된다”는 발언을 이끌어내 주목을 받았다.시지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앞서 지난해 10월 7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나 ‘2015년 세계 반파시스트전쟁 및 중국인민의 항일전쟁승리 70주년 (기념)활동’을 함께 치르기로 합의한 바 있다.한편 일본이 한국이나 중국, 러시아 등과 영토분쟁을 하고 있는 독도, 센카쿠(중국명 조어도), 남쿠릴 열도(일본 용어 북방영토) 등 영토분쟁 문제들도 카이로선언(승전국의 전후 일본제국 영토 처리 관련 사전합의)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