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국민행복기금을 아시나요?”
2024-02-01 서효문 기자
매일일보 = 서효문 기자 | 약 10년 전 금융권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6개월 이상 채무를 제때 갚지 못하거나 연 20% 이상 고금리 대출을 사용하는 채무자 구제를 위한 ‘국민행복기금(이하 행복기금)’ 출범이 그것이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행복기금은 어려워진 서민들의 숨통을 틔우는 ‘상생 금융’ 차원에서 도입됐다.
10년이 지난 현재 행복기금의 위상은 사실상 미미하다. ‘유명무실화’ 됐다고도 볼 수 있다. 행복기금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전략’에 불과한 단발성 이벤트라고 평가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문제는 현 정부가 행복기금과 같은 유사한 이벤트에 치중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15일 2000만원 이하 연체를 상환한 개인 대출 및 개인사업자 차주의 신용 사면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31일에는 4% 금리를 초과하는 이자를 납부한 개인사업자와 소상공인에게 해당 규모 만큼 이자를 환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모든 것이 ‘상생 금융’ 차원에서 발표됐다. 상생 금융이라는 포장지에 쌓여 있지만 이는 결국 존재감이 급락한 행복기금을 떠오르게 한다. 금융당국과 정부의 발표대로 소상공인과 개인 사업자에게 단발적인 혜택을 제공하더라도 과연 실질적인 채무 구제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행복기금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연체 채무자들은 더 이상 채무 구제를 위해 행복기금을 활용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금융권에서 금기시되던 ‘탕감’과 ‘면책’이라는 단어를 다시 떠오르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현금 지원 등에 치중한 단발적인 지원 정책만 지속된다면 결국 ‘탕감’과 ‘면책’이라는 수단을 고려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한 관계자는 “행복기금은 금융권에서 금기시 됐던 ‘탕감’이라는 단어를 금융당국에서 꺼내게 되는 우를 저질렀다고 할 수 있다”며 “약 10년이 지난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단발적인 금융 지원 제도는 행복기금과 큰 차이가 없으며, 해당 제도로 인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결국 면책과 탕감을 골자로 한 새로운 지원책을 꺼내들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탕감과 면책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해서 서민과 소상공인에 대한 금융 지원을 멈추자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현금 지원 중심의 단발성 정책을 벗어나 금융권간 대환 이동 등 새로운 차원의 지원책을 고려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자격이 충분한 2금융권 대출 차주들의 1금융권 이동을 좀 더 쉽게 만들어야 한다.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신용등급과 같은 정량적인 수치보다 관공세, 통신비, 소비 패턴 등 정성적 수치를 좀 더 활용한 평가 체계 도입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정부와 금융당국으로서는 서민들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현금 지원 중심의 단발성 지원은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 행복기금을 통해서 확인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채무자들이 성실 상환을 전제로 채무를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좀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제도를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