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김종혁 기자 |
- - 무엇이 삶의 ‘경험’을 불러일으키는가?
- - 인공지능이 인공 ‘의식’을 함축하는가?
『생명 그 자체의 감각』은 ‘의식(consciousness)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생명 그 자체의 감각’이라고 대답하는 책이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것[느낌] 그 자체, 삶의 감각 총체를 의식이라고 본다. 이 의식의 과정을 신경과학적으로 설명해 경험과 대뇌피질의 활동(활성화) 간의 관계를 실험을 통해 증명해 보이고, 의식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로서 ‘통합정보이론’을 제시한다.
범심론이 제시하는 큰 틀의 문제의식을 공유하지만, 범심론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어 의식의 신경 메커니즘이 ‘정량적’이고 ‘일관’되며 실험으로 ‘증명 가능함’을 보여 준다.
뇌는 어떻게 주관적인 ‘경험’을 일으키는가? ‘경험’의 부인할 수 없는 속성(공리, 공준)은 무엇인가? 코흐는 “내가 사용하는 모든 느낌(feeling)은 곧 경험(experience)이다”라고 말하며, 경험이 느낌의 상위 항목이라 인식하는 기존의 통념과는 달리, 경험과 느낌을 동급으로 정의한다. 즉 ‘경험’에 집중해 다양한 사고실험과 연구를 수행하고 분석한다.
지각-반응 검사, 착시 현상과 환영 실험, 좀비 행위자, 뇌 분할 실험과 뇌 연결 실험, 15년간 식물인간 상태에 있던 테리 샤이보 사례, 의식장애가 있거나 뇌 일부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예, 라이프니츠 방앗간 사고실험, 인실리코 진화 게임 등을 언급하며 ‘경험’에서 시작하여 ‘뇌’로 나아가는 양적 이론인 ‘통합정보이론’의 정당성을 역설한다.
이러한 코흐의 관점은 매우 도전적이고, 의식 이론을 지탱하는 특수하고 단단한 지반이기도 하다. 역자가 말미의 옮긴이의 말에서 언급했듯, ‘공리적 체계화’를 통해 이론의 정당성을 언급하는 예는 요즘 드물지만, 코흐는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처럼 통합정보이론이 얼마나 치밀한지를 보여 주기 위해 ‘공리적 체계화’를 시도했음을 해설한다.
- 뇌는 어떻게 주관적(의식적) 경험을 일으키나? 무엇이 경험인가?
- 모든 동물은 삶의 광경을 ‘경험’한다 어떤 프로그램 모델도 ‘경험’을 지닐 수 없다
[의식적] 경험은 다섯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속성을 가진다. 첫째, 경험은 관찰자 없이 본질적으로 “그 자체로 존재”한다(내재적 존재 공준). 둘째, 어느 경험이든 “구조화되어” 있다. 청각과 후각, 느낌과 감정을 포함한 감각적 측면이 복잡하게 직조되어 있다.
이 경험의 구조는 시냅스와 뉴런, 뇌의 활성화라는 물리적 기반을 지닌다(구성 공준). 셋째, 어느 경험이든 매우 정보적이며 “구체적 내용”을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다(정보 공준). 넷째, 경험은 통합적이다. 경험을 요소별로 분할하여 설명할 수 있지만 실제 경험은 “내 몸을 포함한 전체”를 경험한다(통합 공준). 다섯째, 어느 경험이든 “내용 및 시공간 면에서 제한적”이다. 나의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 경험에서 제외된다(배제 공준).
이렇듯 경험의 다섯 공준은 통합정보이론을 가능하게 하는 기초로 작동한다. 이를 통해 모든 동물이 삶의 광경과 소리를 경험한다고 추론하고, 기존의 통념과는 달리 어떤 프로그램 모델도 진정한 경험과 의식을 지닐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뇌의 완벽한 소프트웨어 모델조차 의식이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블랙홀을 시뮬레이션하는 천체물리학자들이 왜 슈퍼컴퓨터로 빨려 들어가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의 모델이 실재에 그렇게 충실하다면, 왜 모델링을 하는 컴퓨터 주위에 시공간이 닫히지 않는지, 왜 블랙홀이 생성되지 않는지를 묻는다. 즉 ‘존재’는 계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흐는 통합정보이론을 통해 의식은 ‘자연의 영역’, 의식은 ‘존재’에 관한 것임을 확실히 한다.
의식을 분석하고 정량화하는 수학적 모델
통합정보이론은 의식을 분석하기 위한 ‘수학적 모델’을 제안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뇌라는 물리적 시스템이 의식에 관여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코흐가 주장하는 통합정보이론에 따르면, 시스템 “의식”(주관적으로 어떠한가)은 시스템의 “인과적 힘”(객관적으로 어떠한가)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물리적 시스템의 완전한 “인과적 힘[속성]”을 전개함으로써 물리적 시스템의 의식적 경험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이렇게도 볼 수 있다. “미약하더라도 인과적 힘이 있다면 의식이 있다.” “인과적 힘을 복제하면 의식이 뒤따라 나온다.”
통합정보이론은 경험에서 시작해 기본 신경 메커니즘으로 진행되는 정량적이고, 엄격하며, 일관되고, 경험적으로 테스트 가능한 이론인 만큼, 시스템[생명체]이 단순하든 복잡하든 간에 과거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정도가 미래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즉 “내재적인 인과적 힘”을 정량화할(환원할) 수 있음을 밝힌다.
Φ(파이 또는 화이)로 정량화되는 시스템[생명체]의 통합정보가 클수록 해당 시스템의 의식이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기계학습의 기반이 되는 신경망과 같이 자체에 인과적 힘이 없는 경우(피드포워드 그물망의 구조인 경우), Φ는 0이다. 즉 통합정보 최댓값은 0이므로 의식이 없다.
미시간대학교 의식과학센터 교수인 매슈 오언은 말한다. “통합정보이론의 가장 큰 강점은 그것의 기본 철학적 약속을 ‘명시적’으로 만드는 이론적 접근이라는 점이다. 특정 약속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 접근법이 그러한 약속과 인식론적 역할을 분석하는 데 아주 용이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생명 그 자체의 감각』에서 철학적 내용에 대해 철학자들은 분명 논쟁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열렬한 철학적 반대자조차도 통합정보이론의 의식 연구 접근법에서 이 내용이 노골적이고도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의식 과학이 나아가야 할 길
의식은 우주 전체에 얼마나 퍼져 있을까? 통합정보이론에 따르면 [의식적] 경험은 크거나 작은 모든 동물들, 박테리아, 원자, 어쩌면 식물과 ‘무생물’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도 존재할 수 있다.
통합정보이론의 윤리적 맥락은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지도 않고 자연이 인류의 목적에 부합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이에 발맞춰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아끼고, 반려동물을 향해 깊은 애정을 표하며, 육식을 하다가 의식 연구를 통해 신념에 의한 채식주의의 삶을 사는 크리스토프 코흐는 자신의 이론에 걸맞은 삶을 사는 양식 있는 과학자이다.
이 책은 저자가 추구하는 두 이론인 NCC(의식의 신경상관물 이론)와 IIT(통합정보이론)에 기대어 의식의 문제를 풀어가고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의식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높여 주는 풍부한 문제제기를 지닌 책이다.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는 세계적 신경과학자이자 현재 가장 논쟁적인 과학철학자이다.
그동안 철학의 대상이었던 ‘의식’을 과학적 탐구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선구자로 평가받는 것과 동시에, 전에 없던 급진적 혁신을 제안하는 과학 이론인 통합정보이론으로 최근(2023년 9월) 논란의 중심에 있다. 2028년 말까지 ‘완벽한 의식 측정기 연구’가 완료될 것이라 장담하며 과학철학자로서의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저자는 또한 뇌 신경회로의 정확한 시뮬레이션의 구현에 평생 헌신할 것임을 밝혔다.
1982년 독일 튀빙겐 막스플랑크생체인공두뇌학연구소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후,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에서 인공지능연구소와 뇌인지과학부에서 박사후과정 연구원으로 4년을 보냈다. 1987년부터 2013년까지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20년 넘게 ‘의식’ 연구에 집중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DNA의 이중나선 구조 발견으로 유명한 프랜시스 크릭과 함께 의식에 관한 혁신적 연구들을 수행했다. 그중 ‘의식의 신경상관물(NCC)’ 발견은 의식 과학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할 만큼 혁신적 사건이었다.
2011년에는 앨런뇌과학연구소의 수석 과학자로 합류했으며, 2015년부터 현재까지 같은 연구소의 소장으로 포유류 뇌를 세포 수준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자는 특히 신경과학의 현대 동향과 철학에 집중하며, 인공지능으로 연구 범위를 확장해 디지털 유기체의 진화를 시뮬레이션한다. 이들이 주변 환경에 적응하면서 두뇌의 통합정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추적하는 데 연구를 주력하고 있다.
역자 박제윤은 인천국립대학교 기초교육원 객원교수를 지냈다. 처칠랜드 부부의 신경철학을 주로 연구하며, 그(들)의 저서 『뇌과학과 철학』 『신경 건드려보기』 『뇌처럼 현명하게』 『플라톤의 카메라』를 번역했다.
지은 책으로 『철학하는 과학 과학하는 철학(전 4권)』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처칠랜드의 표상 이론과 의미론적 유사성」 「창의적 과학방법으로서 철학의 비판적 사고: 신경철학적 해명」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