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안타까운 판박이 소방관 순직, 특단의 안전대책 서둘러야
2025-02-02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매일일보 | 경북 문경시 소재 육가공 공장 화재 현장에서 인명 구조를 하던 소방관 2명이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월 31일 오후 7시 47분경 문경시 신기동 신기제2일반산업단지의 우진푸드(육가공품 제조공장)에서 발생한 화재현장에 출동 화재 진압과 구조 활동에 투입됐던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소속 김수광(27) 소방교와 박수훈(35) 소방사는 이 공장 건물 안에서 인명 수색 도중 고립됐다 8시간 만에 시커먼 주검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신고 접수 8분 만에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고, “건물 안에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말에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가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참변을 당했다.
국민 영웅 두 소방관의 숭고한 희생은 ‘죽음까지 무릅쓰고 임무를 수행하는’ 공직자의 자세를 새삼 일깨워 주며 모든이의 귀감(龜鑑)과 표상(表象)이 되고 있다. 두 소방관은 모두 미혼으로 평소 “나는 소방과 결혼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소방관으로서 책임감과 사명감이 남달랐다고 한다. 2019년 7월 8일 임용되어 올해 6년 차인 김 소방교는 현장에서 위기에 처한 국민을 구하는 데 솔선수범해 동료들의 신망이 두터웠다고 한다. 지난해 한없이 어렵기만 한 인명구조사 자격증까지 따내며 화재 대응 역량을 키워온 소방의 참 일꾼이었다. 박 소방사도 특전사에서 근무하던 중 “사람을 구하는 일이 지금보다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다”라며 구조 분야 경력직 채용에 지원해 2022년 2월 3일 임용됐다. 두 소방관은 지난해 7월 경북 집중호우 때도 68일간 수색 활동을 벌이기도 한 모범 소방공무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1일 순직한 김수광 소방교와 박수훈 소방사를 각각 소방장과 소방교로 1계급 특진하고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고, 소방청도 7일까지를 애도 기간으로 정하고, 3일 있을 영결식까지 조기를 게양한다. 경상북도는 하늘의 별이 된 순직 소방관의 장례를 ‘경북도청장(葬)’으로 치르기로 하고, 장례위원회 위원장은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맡고, 집행위원장은 박근오 경북소방본부장이 맡는다. 경상북도는 2월 1일 고인들의 마지막 근무지였던 문경시의 문경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했고, 고인들의 고향인 경북 구미·상주소방서를 비롯해 문경소방서, 경북도청 동락관 등 4곳에 2월 2일부터 5일까지 분향소를 운영한다. 발인은 오는 3일 오전 7시로 예정하고 있다. 영결식은 장소를 옮겨 경북도청 동락관에서 3일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진행하는 것으로 유족과 협의가 이뤄졌다. 영결식은 고인에 대한 묵념을 시작으로 1계급 특진과 훈장 추서, 영결사, 조사, 고인께 올리는 글 낭독 순으로 진행하며 영결식이 끝난 후에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동해 안장한다. 경상북도는 고인들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해 장례 기간 모든 직원에게 근조 리본을 패용하고 조기를 게양하도록 했다. 우리에게 허락된 삶의 시간 동안 어느 한순간도 가슴밖에 둘 수 없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안전이며, 이토록 소중한 가치인 안전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초개와 같이 산화하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이다. 우리는 그들을 위대한 국민 영웅으로 부른다. 남을 위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사조(不死鳥)라고 어벤저스 대신 ‘화(火)벤저스’라고도 했다. 우리는 반드시 “살려서 돌아오라” 했고 “살아서 돌아오라” 했다. 하지만 고(故) 김수광 소방장과 고(故) 박수훈 소방교는 끝내 우리 곁에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순직하셨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꽃다운 스물일곱, 서른다섯을 일기로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시면서까지 ‘안전’을 목숨보다 더 소중한 가치로 부각시킨 두 소방관의 숙명적 헌신(獻身)과 운명적 희생(犧牲)을 우리들은 결단코 잊지말고 가슴속 깊이 앙모(倾佩)하고 영혼 속 깊이 숭모(崇慕)하며, 안전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재조명해야 할 것이다. 가슴이 못다한 언어를 눈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눈물을 살아있는 보석이라고 부른다. 또한 가슴 아픈 모든 것들은 소리를 낸다. 하지만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하늘의 별이 되신 두 소방관의 거룩하신 영정(影幀) 앞에서 처절한 심경에 목놓아 울어봐도 전달되지 못하고 반향(反響)없는 메아리가 되어버린 지금 눈물에도 가시가 있다면 가슴속에 맺히고 영혼 속에 응축된 그 서러운 ‘눈물가시’로 잠자는 두 영혼에게 왜 먼저 가셨느냐고 콕 찔러 물어보고픈 절규로 삼가 명복을 빌어볼 밖에 아무것도 할 수 가 없다. 이 어찌 창자가 끊어질 듯한 단장지애(斷腸之哀)의 슬픔이 아니고 몸의 반쪽을 베어 내는 할반지통(割半之痛)의 고통이 아니며 눈물로도 달랠 수 없는 사별리고(死別離苦)의 한(恨)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 참으로 원통하고 괴롭고 서럽고 슬프기 한이 없다. 소방청에서 지난해 7월에 발간한 ‘2023 소방청 통계연보’의 ‘연도별 소방공무원 순직․공상자 현황(2012~2022)’에 의하면 최근 11년간 47명이 순직하였고, 5,235명이 공상을 당해 무려 7,282명이나 숨지거나 다쳤다. 그뿐만 아니라 소방공무원 10명 중 7명이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 있다. 소방공무원은 매년 의무검진으로 건강이상을 확인하지만 정밀검진까지 받는 경우는 건강이상자의 약 6%에 지나지 않았다. 해마다 건강에 문제가 있는 소방관을 쌓여가고 있지만 제때 질환을 확인하는 경우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셈이어서 참으로 안타깝다. 2022년 소방공무원 정기검진 실시자 6만 2,453명 중 4만 5,453명(72.7%)이 건강 이상으로 관찰이 필요하거나 질병 소견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동정받는 소방이 아니라 동경 받는 소방이 돼야 함에도 출동 벨이 울리기만 하면 용수철처럼 뛰어나가 소방차를 타고 긴급출동하여 화마와 싸우다 보니 죽거나 다치거나 병들어 심지어 생명 단축에까지 이르렀다. 그 뿐만이 아니다. ‘공무원 퇴직연금 수급자 직종별 사망자의 평균 사망 연령’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3년간 공무원 퇴직연금 수급 중단 평균연령은 2020년 78세, 2021년 78.8세에 이어 지난해 79.7세로, 해마다 높아가는 추세다. 그런데 직종별로는 소방직이 타 직종에 비해 평균 5년가량 일찍 사망해 연금 수급도 가장 빨리 종료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기준 ▷소방직 74.7세, ▷공안직 78.1세, ▷일반직 78.3세, ▷경찰직 78.8세 순으로 낮은 데 반해 ▷법관ㆍ검사 82.4세, ▷지도직 81.7세, ▷교육직 81.6세 순으로 높게 분석됐다. 소방공무원에 건강과 후생에 대한 국가 차원의 근본 대책이 시급하다는 방증(傍證)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작가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사람들은 재난이 닥쳤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라고 말하고 외부의 거대한 폭력에 맞선 공동체의 결속이 만들어 낸 미래 상태인 ‘재난 유토피아’를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상태를 ‘재난 공동체’라고 새롭게 불렀다. 위기 혹은 재난 상황에서 내가 직접 피해를 입지 않았어도 그 재난을 ‘나’의 일이자 ‘모두’의 위기로 인식하는 소방관이 있다. 소방관들에겐 공통 ‘책임자’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의 책임감은 재난을 아픔이란 통각(痛覺)으로 바라볼 줄 알고 재난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며 위기에 처한 요구조자를 살리려고 헌신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는 “중요한 것은 재난이 아니라 재난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회의 방향을 바꿀 기회를 잡으려는 투쟁이며 그것은 항상 경쟁하는 여러 이해관계와의 투쟁이다”라면서 “재난은 우리가 선잠에서 깨어나도록 충격을 주지만 우리를 계속 깨어 있게 만드는 것은 오직 ‘능숙한 노력’뿐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능숙한 노력이란 평소 소방관이 단련하고 준비한 인명 구조와 화재 진압 역량이다.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은 소방관의 임무 중 화재 진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인명 구조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또한 대중매체는 소방관들을 한껏 치켜세웠지만 대다수 소방관은 적절한 통신장비나 특별한 지시 없이도 위험 속으로 스스로 뛰어드는 속성을 경시했다고 일갈(一喝)했다. “뛰면서 생각하라!” 40년 전 종로소방서 현관 대형 거울에 연두색 선명한 구호로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이라는 슬로건(Slogan) 만으로도 충분히 대변되는 소방관의 숙명(宿命)은 시작됐다. 첫 출근 날 “뛰면서 생각하라!”라는 구호는 많은 의문을 주었다. 왜 “생각하면서 뛰어라!”가 아닌 하필이면 “뛰면서 생각하라”일까. 답을 찾는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생각을 한다.’라는 것은 인간임을 증명하기에 좋은 말이다. 매사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실수가 없다. 하지만 생각은 행동을 가로막는다. 생사를 넘나드는 사선(死線)의 현장에서 생각(Thinking)이 앞서면 행동(Acting)은 많은 제약을 받는다. 생명을 담보로 사지(死地)와 같은 위험한 현장에 들어가 초개(草芥)와 같이 목숨을 던지지 못한다는 말이다. 결단코 현장에서 희생만하는 하루살이의 무모함의 의미가 아니라 오직 뼛속까지 희생과 헌신으로 무장되어 생물학적 반응 수준의 Firefighter(소방관)만이 진정한 소방관이라는 의미다. 2021년 10월 24일(현지 시각) 새벽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해변 인근에 있는 12층짜리 아파트 붕괴 사고로 10월 25일 오전 10시 현재 4명이 사망하고 159명이 실종된 붕괴 현장을 찾은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은 구조대원들의 희생을 높이 평가하며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약간의 소방관을 더 만들었다”라는 속담을 소개했다. 자신을 내던져 사회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공직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개발중심 성장 지상주의 시대의 압축성장과 돌격성장으로 양적인 팽창은 이뤘지만 질적인 개선으로까진 이뤄내지 못했다. 도심의 스카이라인이 수시로 급변하는 수직 고층화, 지하공간의 벌집화를 이룬 지하 심층화, 재난 규모의 대형화, 재난 양상의 다양화, 재난 구조의 복합화로 소방관의 활동 영역은 온통 지뢰밭이다. 반복되는 판박이 소방관 순직을 막기 위한 특단 대책이 화급한 현실이다. 과거에도 대형 화재로 소방관들이 희생될 때마다 인력 충원과 장비 개선 등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지만 별반 달라진 게 그다지 없다. 현장과 괴리된 땜질식 미봉책만 남발하다 보니 비극의 악순환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소방관은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헌신·봉사하기 때문에 가장 존경받는 직업 1위로 꼽힌다지만, 그저 마음 뿐이지 그것으로 끝이다.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더 희생되지 않도록 더 깊은 고민과 더 슬기로운 지혜가 절실하다. 정부는 소방청이 스스로 숙원사업으로 인식하고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만큼 소방청을 믿고 화재 안전 대응 지침과 조직 구조 및 지휘 체계 등을 점검해 제대로 된 재난 대응 매뉴얼을 마련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불요불급한 간섭이나 참견 대신 소방의 전문성과 그 특수성을 인정하고 더 지원하고 더 격려하고 더 응원해야 한다는 간곡한 충언이다. 소방관의 처우와 작업 환경을 선진국 수준으로 더 올리는 것도 당면한 현안으로 화급하다. 인명 검색 로봇과 드론, 열화상 카메라 등 소방관의 현장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필수 장비부터 서둘러 확충할 수 있도록 충분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임무 수행 중 목숨을 바친 소방관과 유족에게는 합당하고 충분한 예우와 지원을 해야 할 것은 물론이다. 오늘도 화재와 재난 현장에 출동하고 있는 전국의 모든 소방관을 응원하며 두 소방 영웅의 고결하고 숭고한 희생에 삼가 명복을 빌며 진심담긴 애도와 경의를 표하며 슬픔에 잠긴 유가족에게도 눈물 담은 가슴 속 언어로 위로를 드린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