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컴북스이론총서 『세일라 벤하비브』

- 다문화 시대, ‘우리/그들’의 경계를 재상상하라 - 예일대 정치철학 석학이 제언하는 대화적 다문화주의

2024-02-06     김종혁 기자

매일일보 = 김종혁 기자  |  2023년 12월 법무부가 공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의 수는 250만 명을 넘어선다. 총 인구 수의 4.89퍼센트에 이르는 규모로, 저출산 문제를 고려하면 그 비율은 앞으로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는 한 나라의 외국인 비율이 5퍼센트를 넘는 사회를 ‘다문화 사회’로 정의하고 있다. 단일민족·단일문화로 오랜 기간 살아온 우리는 과연 다문화 사회에 진입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갈 채비가 되어 있을까?
세일라 벤하비브는 외국인, 이주민, 난민, 망명자 등 이른바 ‘이방인’ 문제에서 비롯하는 정치적·법적 쟁점에 천착해 온 정치철학자다. 한 사회의 문화는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인 주류·선주 집단과 ‘그들’인 비주류·이주 집단의 경계가 형성·재구성·재협상되는 과정에서 계속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보고, 대화적·숙의적 절차를 바탕으로 문화 간 갈등과 충돌을 극복할 방법을 제시해 왔다. 이 책 『세일라 벤하비브』는 다문화 사회에 부합하는 문화 개념인 ‘비본질주의적 문화’부터, 문화 간 대화의 토대가 될 ‘숙의 민주적 모델’과 ‘민주적 반추’, 난민 문제와 직결되는 ‘보편적 환대권’과 ‘국경의 다공성’ 등 벤하비브의 사상을 구성하는 열 가지 키워드를 해설한다. 벤하비브의 다문화 연구는 21세기 초입 이후, 지난 20여 년 동안 더욱 심화했다. 이는 경제 불황과 기후 위기 그리고 전쟁의 포화를 피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는 이들의 수가 가파르게 늘어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이방인들의 다양성과 이질성이 환영받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동질화 경향이 심화하고 원리주의 관점이 득세하며 분리주의 양상이 격화하고 있다. 벤하비브의 다문화 연구는 우리 또한 앞으로 더욱더 자주 당면할 문제를 방관하지 않고 이에 책임 있게 임하는 데 기반이 되어 줄 것이다.

세일라 벤하비브(Seyla Benhabib, 1950∼ )는
현대 서구 사회의 정치철학 담론을 이끄는 미국 정치철학자다. 현재 예일대학교 정치학과 명예교수이자 컬럼비아로스쿨 연구학자와 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튀르키예 이스탄불 태생이자 유대인 혈통으로서, 비서구 사회 속 유대계 여성 이방인이라는 다양하고 중첩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개인적 배경은 벤하비브의 학문 여정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비판 이론과 페미니즘 철학을 바탕에 두고 문화 이론과 정체성 정치, 이주의 도덕성과 성원권 정치, 세계주의와 다문화주의 구상 등 다방면에 걸쳐 업적을 남겼다. 대표 저술로 ≪자아의 위치 짓기(Situating the Self)≫(1992), ≪문화의 주장(The Claims of Culture)≫(2002), ≪타자의 권리(The Rights of Others)≫(2004), ≪또 다른 세계주의(Another Cosmopolitanism)≫(2006) 등이 있다.

지은이 정채연은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인문사회학부 대우부교수다. 고려대학교에서 법학사, 법학 석사,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대학교(NYU) 로스쿨에서 LL.M.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뉴욕주 변호사다.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미래전략대학원 연구조교수를 지냈다. 법철학, 법사회학, 법인류학 같은 학제 간 연구를 이론적 토양으로 해 법다원주의, 다문화주의, 관용 그리고 세계주의에 대한 기초법적 연구를 지속해 왔다. 최근에는 지능정보사회에서 인공지능과 지능로봇, 포스트휴먼, 블록체인 기술과 관련된 법이론적 쟁점에 주목하고 있다. 저서로 ≪코로나 시대의 법과 철학≫(공저, 2021), ≪법의 딜레마≫(공저, 2020), ≪법학에서 위험한 생각들≫(공저, 201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