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PBR株'가 이끄는 국내 증시...외국인만 웃고 개미는 울상
외인 순매수 종목 주가 모두 올라...개미 수익률은 '뚝' 정책 기대감에 빚투도 급증..."단기 과열돼 주의 필요"
2024-02-12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저PBR주가 국내 증시를 이끌고 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도입되면 저평가가 해소될 것이란 기대감이 주가를 끌어올렸다. 다만 투자 주체별 희비는 엇갈린다. 저PBR주를 쓸어 담은 외국인 투자자의 수익률은 화려하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울상 짓고 있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8일까지 유가증권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는 5조4862억원을 순매수했다. 정부가 지난 24일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후 외국인의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으로 내달부터 도입될 예정이다. 외국인 매수세는 대형 종목에서 두드러졌다. 외국인은 지난달 19일부터 지난 8일까지 15거래일 연속 순매수했다. 외국인이 15일 이상 연속으로 코스피200 기업을 사들인 것은 2022년 9월 29일~10월 27일(19일) 이후 약 1년 2개월 만이다. 개별 종목으로 보면 현대차(1조2309억원), 기아(5397억원), 삼성물산(3073억원), KB금융(2780억원) 등 저PBR 종목에 외국인의 자금이 몰렸다. 특히 현대차 순매수 금액은 코스피 전체 순매수액의 21.9%에 달한다. 외국인의 순매수 상위 20개 종목은 일제히 상승했다. 그중 14개 종목은 오름폭이 두 자릿수일 정도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삼성화재가 40.51%로 가장 많이 올랐다. 현대차(35.14%), 삼성물산(33.3%)도 급등했다. 한미반도체(32.6%), 삼성생명(32.59%), SK스퀘어(30.14%)도 30% 넘게 올랐다. 외국인과 달리 개인은 6조5926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차익 실현에 나섰다. 특히 개인은 외국인 순매수 1위인 현대차를 1조4301억원어치 팔았다. 기아(6182억원), 삼성물산(4515억원), KB금융(3277억원) 등 순매도 상위 종목 대부분이 외국인 순매수 상위 종목과 일치했다. 다만 개인이 사들인 종목의 수익률은 초라했다. 매수 상위 20개 종목 중 주가가 오른 종목은 단 3종목이다. 삼성SDI(8.76%), LG에너지솔루션(3.55%) 정도만 유의미한 상승률을 보였고 SK하이닉스(0.92%)는 소폭 오르는 데 그쳤다. 반면 가장 많이 사들인 NAVER(2988억원)는 5.5% 내렸고, 삼성전기(-4.8%), 현대오토에버(-11.07%), 하이브(-9.91%), LG이노텍(6.37%) 등 순매수 상위 종목 1~5위가 모두 하락했다. 조창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당분간 저PBR 종목의 상승세는 이어질 것"이라며 "저PBR 종목 중에서도 재무 건전성이 우수한 종목의 주가 상승 폭이 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무 구조가 탄탄한 기업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구체화한 후 주주환원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개미들의 '빚투'도 급증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유가증권시장의 신용잔고금액은 9조4510억원으로 지난해 말(8조7338억원) 대비 7172억원(8.2%) 늘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자금을 빌린 뒤 변제를 마치지 않은 금액으로, 이 잔고가 늘었다는 것은 레버리지(차입) 투자가 증가했다는 의미다. 시가총액 상위종목 중 반도체주를 비롯해 저PBR 종목으로 분류되는 자동차·금융주 신용잔고가 일제히 늘었다. 8일 기준 현대차의 신용잔고는 1454억5000만원으로 지난해 말(880억4000만원) 대비 65% 증가했다. 기아의 신용잔고는 1085억원으로 작년 말(490억6000만원) 대비 121% 늘었다. 아울러 KB금융과 신한지주 등 금융·지주사 신용잔고도 올해 들어 각각 113%, 178% 급증했다. 반도체 종목 중 삼성전자 신용잔고는 지난해 말 대비 42% 늘었으며, SK하이닉스는 70% 증가했다. 반도체 업황 턴어라운드 기대감이 산재한 가운데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수혜가 기대되는 저PBR 종목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진 점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에서는 저PBR 테마에 대한 무분별한 투자를 지양하고 기업의 기초체력을 따져보며 투자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특히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구체적 내용이 확정된 이후에는 정책 재료 소멸로 인해 그간 올랐던 주식들이 한번에 조정을 받을 가능성도 염두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조병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저PBR주가 테마주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단기간에 과열된 측면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며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 등을 고려해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