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트칼럼] 미분양 시한폭탄 고개… 선제 대책 세워야

2025-02-13     권한일 기자
권한일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2023년은 건설사들의 '버티기 신공'이 통한 한 해 였다. 정부 개입 아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후불제가 작동한 덕을 봤기 때문이다.

특례보금자리론이 풀렸고 다주택자 주담대 허용·청약 추첨제 확대·분양권 전매제한 완화·규제 지역 해제·기준금리 동결 등 주택 거래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처방들이 쏟아졌다. 급한 불부터 끄자는 분위기에서 원칙이 모호했던 지난 1년간 부실 사업장 대부분은 정리되지 않은 채 고금리 대출로 연명했고 건설사들이 떠안은 이자는 불어났다.  정부의 인공호흡으로 분양 경기가 되살아나는 듯 했지만 특례론이 묶이기 시작한 10월부터 분위기는 급속히 악화됐다. 주춤하던 미분양 물량도 증가세로 돌아섰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작년 12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2489가구, 공사가 끝났지만 분양이 안 된 '악성 미분양'은 1만857가구에 달했다. 지난해 전국 분양 물량이 1년 전보다 33.1%, 10년 평균치 대비 45.3% 급감한 19만2425가구였지만 미분양 증가 폭은 가팔랐다. 올해 신규 분양에 나선 곳들은 일부 시세차익이 보장된 단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미분양 물량을 대거 남기고 있다.  미분양은 PF 보증을 선 시공사들의 우발채무 증가와 재무건전성 악화로 이어진다. 계약금·중도금·잔금으로 들어와야 할 분양 대금이 회수되지 않으면 공사비 조달은 물론 PF 차입금 상환 등 현금 유동성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일각에선 아직 미분양 위험 기준선인 6만2000가구를 조금 넘어섰다며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지만, 분양 물량 감소 폭 대비 청약 미달률과 적체된 분양 대기 물량을 따져보면 상황은 급속도로 심각해질 수 있다. 건설업계 안팎에선 과거 금융위기 이후 발생한 줄도산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2008년 말부터 2011년까지 미분양 급증과 부동산 PF 부실 문제가 겹치면서 시공능력 100위권 이내 건설사 가운데 30%가량이 유동성 위기로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로 넘어간 경험이 있다. 최근 상당수 건설사들의 재무 구조에는 적신호가 들어왔다. 도급 50위권 이내 대형 건설사 중 부채비율이 300%에 육박하는 건설사가 크게 늘었고 최근 2년간 PF가 포함된 부동산·건설업 연체액과 연체율은 각각 3배, 2.4배씩 뛰었다. 고금리 만기 연장 등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와 치솟은 공사비는 결국 고(高)분양가를 낳고 있다. 마진율이 급감한 상황에서 분양가를 낮추면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될 건설사로썬 분양가를 낮추기도 어렵다. 일개 건설사에 대형 미분양은 폭탄과도 같다. 미분양은 시행사와 원도급사는 물론 얽히고설킨 하청들의 연쇄 도산을 불러올 수 있다.  당면한 부동산 업황상 미분양 증가세를 꺾을 수 없다면 정부는 금융권과 건설사들이 받을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세심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부실기업, 자연 도태' 기치도 일리가 있지만 과거 사례처럼 대형사 부실에 따른 수백여 하도급사 줄도산과 불필요한 공적 자금 투입을 막기 위해 정부와 업계가 선제적으로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