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제일제당, '사랑의 용기' 화제.."수익성보다 생명이 먼저"

200여명 불과한 선천성 대사질환자 위해 '햇반 저단백밥' 개발

2009-10-22     류세나 기자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CJ제일제당이 단 200여명만을 위한 '특수 햇반'을 내놓는다. 특히 이익추구를 목표로 하는 사기업이 시장성을 고려하지 않은 제품을 출시했는 점에서 CJ의 '희생과 봉사정신'이 화제가 되고 있다.

CJ제일제당(대표이사 김진수)은 오는 26일부터 단백질 제한이 필요한 선천성대사질환자를 위한 '햇반 저단백밥'을 출시한다고 22일 밝혔다. '햇반 저단백밥'은 '페닐케톤뇨증(PKU)' 등 단백질 제한이 필요한 선천성 대사질환자 200여명을 위해 만들어진 특수 제품으로, 일반 햇반 보다 단백질 함유량이 1/10에 불과하다. 체내에 단백질의 대사과정에 필요한 효소들의 일부가 결핍되어 단백질이 함유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없는 희귀질환자를 위한 기능성 음식인 것. 선천성 대사질환이란 음식물의 섭취를 통해 필요한 영양분을 소화, 흡수하는 물질대사 과정에 필요한 효소들 중 일부가 결핍된 상태로 태어나서, 영양분의 대사과정이 불완전하여 영양분 등의 소화 흡수 후 생긴 최종 대사물질이 뇌나 신체 등에 심각한 손상을 주는 질환을 말한다.

CJ제일제당측이 이 제품을 출시하게 된 계기는 사내 직원 중 한 명이 선천성 대사질환 중 하나인 페닐케톤뇨증을 앓고 있는 자녀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CJ제일제당 하나로마트 서울영업팀 팀장인 윤창민부장(40)이 바로 그 주인공.

윤 부장의 첫째 딸 하영(5)이는 선천성 대사질환 의무검사를 통해 생후 3일만에 병을 확진 받았다. 어릴 때는 PKU 환아를 위해 특별 제조된 분유를 먹었으나, 밥을 먹을 나이가 되면서 고민이 시작됐다. 국내에는 PKU 환자를 위해 특별 제조된 저단백 즉석밥이 없어 일본 제품을 사다 먹었지만, 한 개에 4000원 정도로 값이 매우 비싼데다 무엇보다 밥이 떡처럼 뭉개지고 딱딱해 아이가 외면했기 때문이다. 또 이 질환을 앓고 있는 환우들은 단백질 식이요법을 하지 않으면 페닐알라닌 대사산물이 혈액과 뇌에 축적돼 지능지수가 저하된다. 생후 1년까지 치료를 시작하지 않으면 지능지수는 50이하로 떨어진다. 이들에게 저단백 식이요법은 치료 방법인 동시에 질환의 진행을 막는 최선의 예방책인 것.이런 까닭에 윤 부장은 지난 2월 CJ제일제당 김진수 대표와의 면담 자리에서 PKU 질병에 대해 설명하고, 즉석밥 최고의 기술을 갖고 있는 CJ가 이들 환아를 위한 저단백밥을 만들어 줄 수 없느냐고 요청했다.이에 김진수 대표는 그 자리에에서 제품 개발을 약속했고, 다음 날 제품 연구와 개발을 담당하는 식품연구소에 저단백 즉석밥 개발을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식품연구소가 제품을 개발만 한다면, 제품의 수익성에 상관없이 제품을 출시하겠습니다. 우리의 R&D역량을 믿고 기다려봅시다.” 이는 김진수 대표가 윤창민 부장과의 만남 후 다음날 윤 부장에게 직접 쓴 메일 내용 중 일부다. 대표이사의 전격적인 결정 덕분에 햇반 저단백밥은 지난 3월부터 본격적인 제품 개발에 들어갔고 7개월만인 이달 말부터 완제품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제품 개발을 담당한 식품연구소 정효영 연구원은 “단백질은 쌀알의 구조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단백질을 제거한 쌀은 쉽게 뭉개지고 끈적여 단백질을 제거하면서도 밥 맛을 유지시켜주는 것이 관건이었다”며 “단백질 제거를 위해 주로 사용되는 화학용액(알칼리액) 처리 대신 단백질 분해효소를 이용하고, 단백질 제거에 효과적인 독자적 제조장치를 개발하여 밥 맛도 살리고 단백질도 기존 흰 밥에 비해 1/10로 줄인 저단백 햇반이 나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햇반 저단백밥에는 페닐알라닌 성분이 약 90% 제거가 되어 있어 부담 없이 밥을 먹을 수 있게 된 것. CJ제일제당이 제품 개발에 투자한 비용은 약 8억원. 그러나 이 제품의 연간 매출액은 5천만원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페닐케톤뇨증 환자 140여명을 포함해, 저단백 식품을 먹어야 하는 아미노산 대사질환자들이 200여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번 햇반 저단백밥은 선천성 대사질환자를 위한 국내 두 번째 제품이다. 매일유업이 99년부터 페닐케톤뇨증을 포함한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 환아들을 위한 8종의 특수분유를 생산, 보급하고 있으며, 매일유업과 CJ제일제당을 제외하고는 국내에서 이들 환자들이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을 만드는 곳은 전무한 실정이다. 반면 외국의 경우 저단백 과자, 저단백 스파게티, 저단백 빵 등 다양한 가공식품이 있어 몸이 아픈 아이들도 안심하고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사회가 배려하고 있다. 한편 지난 7월 PKU 환우회 캠프에서 CJ제일제당의 저단백밥 시제품 시식이 있었다. 환아와 부모들은 밥 맛을 본 후 “밥이 찰지고 밥알이 살아있다”, “일본 즉석밥은 딱딱하고 떡 같아서 가위로 조그맣게 잘라주거나 국에 말아야 먹일 수 있었는데 이 제품은 일반밥과 거의 밥맛이 비슷하다” 고 입을 모았다. 대다수 부모들은 “아이들이 밥을 더 달라고 해도 안심하고 줄 수 있는 밥이 생겼다”며 “너무 고맙다”고 눈물을 흘렸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