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컴북스이론총서 『아비 바르부르크』

- 모든 시대의 기억과 몸짓을 누비는 미술사 

2024-02-16     김종혁 기자

매일일보 = 김종혁 기자  |  누구나 쉽게 이미지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시대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지를 제대로 읽고 이해할 방법을 모른다. 그저 이미지 데이터의 급류에 휩쓸릴 뿐이다.

‘이미지학’의 창시자 아비 바르부르크의 사유를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바르부르크는 대표적 기억 매체인 이미지를 연구해 “후세가 비극에 저항할 자기의식을 갖도록 돕겠다는” 포부를 내비치면서 균형과 절제, 거리두기를 함의하는 능동적 이미지 읽기 방식을 제안한다.
 바르부르크는 한마디로 ‘경계를 넘어선’ 연구자였다. 양식 구분과 학문적 경계에 갇힌 미술사를 단호히 거부하고 학제적 접근을 취해 미술사 연구를 인류학적 탐구로 확장했다. 특히 고대 이래 인간 감정을 표현해 온 몸짓 언어에 주목했다. 이러한 주제하에 이루어진 이미지 탐색은 미술 작품뿐 아니라 기존 미술사가 기피한 주술과 점성술, 종교 의례, 축제까지 가로지른다. 폭넓고 유연한 접근 태도 덕에 바르부르크의 이름은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시각문화 연구, 매체 이론, 기억 연구 분야에서 활발히 회자되고 있다. 이 책은 열 가지 키워드로 바르부르크의 방대한 학문 세계를 여행한다. 바르부르크가 직접 만든 조어이거나 빈번히 사용한 용어인 “파토스포르멜”, “사유공간”, “고대의 잔존” 등을 살펴보며 인간의 역사에서 이미지가 어떤 역할을 수행해 왔는지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바르부르크가 자신의 연구를 총망라한 이미지 패널 ‘<이미지 아틀라스 므네모시네>’를 구성한 방식과 그의 장서에 기반해 세워진 ‘바르부르크문화학도서관’의 변천사도 상세히 조망할 수 있다.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1866∼1929)는 독일의 미술사학자. 도상학, 문화학의 선구자이자 이미지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다. 1866년 6월 13일 독일 함부르크의 은행가 가문에서 태어나 본, 스트라스부르, 피렌체 등에서 고고학과 미술사를 공부했다. 보티첼리의 작품 <비너스의 탄생>과 <봄>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래 르네상스 시대 예술을 중심으로 고대부터 이어진 인간의 몸짓 표현을 연구했으며 1896년 미국을 방문해 약 1년간 머무르며 북아메리카 푸에블로 인디언의 문화를 인류학적으로 고찰했다.

방대한 사료와 책을 수집한 장서가로서 바르부르크문화학도서관을 건립해 강연과 전시 활동을 전개했고 조현병으로 인한 요양원 체류 이후 자신의 연구를 총망라한 이미지 자료 모음인 <이미지 아틀라스 므네모시네> 패널을 구성했다. 1929년 10월 26일 갑작스러운 심장 마비로 생을 마감하면서 <이미지 아틀라스 므네모시네>는 미완의 프로젝트로 남았다. 바르부르크 사후 바르부르크문화학도서관이 소장한 자료는 나치 탄압을 피해 영국으로 옮겨져 런던대학교 부설 바르부르크연구소의 토대가 되었고, 독일 통일 이후 함부르크에서는 과거 바르부르크문화학도서관이 위치했던 건물이 바르부르크하우스로 복원되어 바르부르크의 학문 세계와 탐구 정신을 이어 가고 있다. 지은이 김보라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초빙교수다. 독어독문학과 예술학을 전공한 후 이미지와 기억, 매체 확장, 이미지 생태학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전시 <입장들>, <크라프트베어크2019: 호모 심비우스> 기획에 참여했으며 2021년 호반문화재단 H아트랩 1기 입주이론가로 선정된 바 있다. 주요 논문으로 “세계극장: 아비 바르부르크의 문화이론에 나타난 퍼포먼스 패러다임”(2020), “디지털 미디어 시대 회화의 확장에 대한 고찰”(2019)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아트폼스≫(공역, 2016), ≪미디어비평용어21≫(공역, 2015), ≪꼭 읽어야 할 예술이론과 비평 40선≫(공역, 2013), ≪개념미술≫(2008), ≪바실리 칸딘스키≫(200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