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전공의, 업무개시명령 ‘무시’… 의료체계 개혁 불가피
복지부, 전공의 5397명에게 현장복귀명령… 복귀 여부 미지수 政 의료인 ‘면허정지’ 카드 난항… 韓의료체계 민낯 드러나
2025-02-21 이용 기자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며 병원에 사직서를 던진 의료인에게 정부가 업무 재개를 명령했다. 그러나 의료인들이 현장 복귀를 거부하면서 의료대란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번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국내 의료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드러난 만큼, 오히려 ‘의료체계 개혁’에 명분을 실어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1일 진행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에서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20일 오후 10시 기준 100개 수련 병원 소속 전공의의 71.2% 수준인 8816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근무지 이탈자는 소속 전공의의 63.1%인 7813명으로 파악됐다. 앞서 빅5 병원들은 지난 19일까지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협의하고, 20일부터 근무 중단에 나선 상태다. 정부의 면허정지 경고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수도권 상급병원에 이어 전북, 대전, 인천, 제주 등 지역 거점 병원들도 사직 행렬에 동참했다. 수술 인력이 크게 축소된 병원 측이 환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수술 연기 및 취소를 통보해 전국 각지에서 의료대란이 일어나는 중이다. 복지부는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를 운영한 첫날(19일) 하루 동안 환자나 가족들로부터의 의료이용 불편 상황에 대한 상담이 총 103건으로 확인했다. 그중 피해신고를 접수한 사례가 34건이었다고 전했다. 그중 27건은 의료기관으로부터 수술이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은 경우다. 나머지는 진료 예약이 취소되거나 진료가 거절된 사례로 나타났다. 신고인의 자녀가 1년 전부터 예약된 수술을 앞두고 있다가 갑자기 수술을 위한 입원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고, 보호자로서 자녀의 수술과 회복을 돌보고자 이미 회사를 휴직한 상태로 추가 피해마저 우려되는 사례가 있었다. 복지부는 현장점검에서 근무지 이탈이 확인된 전공의 6112명 중 이미 업무개시명령을 받은 715명을 제외한 5397명의 전공의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했다. 명령에 불응할 경우 최대 면허 정지 행정 처분이 이뤄질 수 있다. 정부의 경고에도 의료계는 요지부동이다. 의료계가 강경하게 나올 수 있는 주요 원인은, 실제 의료 현장에선 인력 부족 현상을 겪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앞서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같은 문제로 의료인들이 파업에 나선 바 있다. 그중 10명이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해 형사 고발됐는데, 사태가 종식되자 정부가 고발을 취하해 처벌을 면한 사례가 있다. 만성적인 의료인 부족 현상으로 의사의 권한이 커진 만큼, 이번에도 정부가 고개를 먼저 굽힐 것이란 예측이 깔려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의료인이 면허 정지 처분을 받으면 필수의료에 투입될 인력 자체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정부 측에서도 강경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부는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대위원장,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 2명이 ‘의사 면허 자격정지’ 사전통지서를 보냈는데, 이마저도 사전 통지일 뿐이며, 사유 또한 '사직을 조장했다'는 이유다. 정작 지난주부터 사직서를 던져 온 전공의들에겐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하면 고발하겠단 입장만 되풀이했다. 특히 집단 사직 시 법적 책임을 물게 하겠다는 정부의 경고에, 일부 의료인들이 법적 책임을 회피할 방법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져 국민 공분을 샀다. 일반적인 직장에서는, 직원들이 집단으로 퇴사를 결의해 업무 마비를 일으킨 경우 업무방해죄로 고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의료인들은 표면적으론 ‘개인 이유로 사직’을 내세우며 법망을 피하고 있다. 또 상급병원의 줄사직 움직임에 국내 수술 전체의 절반 가량이 줄어버린 만큼, 수도권에 집중된 의료 인프라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의대 증원에 대한 근거로 ‘지역 필수의료인력 부족’을 강조한다. 향후 파업 외 다른 이유로도 빅5 병원 및 대형 병원에 공백이 생길 경우, 일반 병의원과 공공의료기관만으론 막대한 수술 수요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그동안의 의정 갈등에서 정부가 먼저 손을 들었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번 사태에 '타협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은 “의대 증원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의료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2000명 증원이 과도하다고 주장하며 허황된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있다"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의-정 간 의대 정원 규모의 재협상 가능성을 일축했다. 현재 여야 정치권과 더불어 국민 여론까지 의대 증원 찬성 쪽으로 기운 만큼, 정부의 의료개혁에 당위성이 생겼단 평가가 나온다. 한 공공의료기관 의료인은 “하루에도 수 십 건의 외과 수술을 진행하는 개원가의 대형성형외과와 피부과를 보라. 이 와중에 대부분 정상 영업한다. 정작 의사 수가 부족한 필수의료 분야는 현장을 떠나고, 떼돈 버는 분야는 가만있으니 그야말로 모순”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