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실거주 의무 3년 유예… 급한 불 껐지만 분쟁 여지 남겨
‘실거주의무 3년 유예’ 개정안 국토위 법안소위 통과 오는 29일 개정안 통과 시 약 5만여 가구 혜택 전망 다만 “계약갱신청구권과 충돌…4년으로 수정” 우려도
매일일보 = 나광국 기자 | 분양가상한제 아파트에 대한 실거주 의무를 3년간 유예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수분양자 입장에서는 당장은 전세를 끼고 잔금을 치를 수 있어 자금 부담을 덜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예가 끝나는 3년 뒤엔 현행 임대차법과 충돌할 가능성도 일부 있는 만큼 대안 마련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실거주 의무가 시작되는 시점이 ‘최초 입주 가능일’에서 ‘최초 입주 뒤 3년 이내’로 완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실거주 의무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는 아파트를 청약받으면 입주 시점에 2~5년간 직접 거주하도록 하는 규정으로, 갭투자자가 아닌 실거주자만 분양을 받도록 하자는 취지다.
주택시장이 과열되던 시기 투기를 막기 위한 규제였지만 2022년 말 분양 시장이 얼어붙자 정부는 작년 1·3 부동산대책을 통해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여당은 폐지를 주장하고, 야당은 투기 수요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며 반대해 주택법 개정안은 국토위에 1년 넘게 계류됐고, 최근 전세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여야가 유예하는 방향으로 합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새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기존 전셋집 계약을 변경·연장하거나 무리하게 대출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던 이들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국토부에 따르면 실거주 의무가 적용되는 단지는 지난 1월 기준 77개 단지 4만9766가구다. 대표적으로 △메이플자이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장위자이레디언트 △강동헤리티지자이 등의 아파트가 실거주 의무 적용을 받는 대표적인 단지다. 또 올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는 강남3구 단지들이 연이어 청약에 나서기 때문에 수혜 가구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현재 환경은 매우 유동적이어서 자금을 마련하는 데 애를 먹거나 기존 살던 집이 안팔리는 상황의 수분양자들이 있다”며 “이번 방안이 통과되면 수분양자들이 시장이 어려워 실입주를 못하더라도 임차인의 보증금으로 잔금을 해결할 수 있고, 3년이라는 여유기간을 얻은 것이라서 운용의 묘가 생긴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이어 함 랩장은 “임대차시장에서 올해 서울 공급물량이 1만가구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이 방안이 통과되면 1만가구대의 물량이 임대차물량 공급이 발생할 수 있어 전세가 상승의 속도조절에도 긍정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실거주 의무가 완전히 폐지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3년 이후에 다시 입주 문제가 불거질 여지는 있다. 올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는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후분양 단지가 늘어나기 때문에 대상 가구수가 5만가구를 더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전세계약갱신권(2+2년)도 여전히 존재해 3년 뒤엔 실거주해야 하는 집주인과 세입자간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통상 2년인 계약기간을 3년으로 맞추기 위해서는 특약사향을 계약을 진행해야 하지만 세입자 이주 문제 등으로 입주를 제때 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청약시점에서는 그 지역에 거주하려 했지만 이후 직장발령 등의 이유로 실거주가 불가능해진 경우 3년 만에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금 여력이 부족한 집주인들에 대해서는 “일단 청약은 했으나 돈이 없어서 일단 전세 주고 전세금을 받아서 잔금 치르는 경우 이것도 3년 유예기간 동안에 그만큼의 돈을 저축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부동산 정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데 완전히 폐지되지 않으면 계속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고 말했다. 다만 “투기와 관련한 안정자치가 미비한 상황인 만큼 지금은 속도조절과 시장 안정이 우선인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임대차보호법과 부합할 수 있도록 유예 기간을 4년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전세 계약갱신권(2+2)이 존재하기 때문에 추후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분쟁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며 “세입자의 주거권 보장 문제도 있고, 추후 분쟁 예방을 위해서라도 실거주 의무 3년 유예가 아닌 전세 계약갱신권에 맞춘 4년 유예 등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