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개 드는 저작권 소송…게임업계 곳곳 법적 분쟁 몸살

엔씨, 카겜·레드랩에 저작권 침해 소송…R2M·아키에이지 워도 ‘현재진행형’ 넥슨-아이언메이스 'P3' 저작권 분쟁도 장기화 조짐…본안 소송서 결판 예상 전문가들 "저작권 침해 가이드라인 시급…내부 검증 절차·창작 윤리 강화돼야"

2025-02-25     이태민 기자

매일일보 = 이태민 기자  |  국내 게임사들의 지식재산권(IP)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확전되고 있다. 대부분의 게임사들이 여전히 보릿고개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자사 IP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소송전까지 불사하는 것이다.

25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IP를 건 법정 다툼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신선한 소재 발굴이 어려워지면서 인기작의 콘텐츠, 디자인 등을 모방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엔씨)는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과 대만 지혜재산및상업법원에 카카오게임즈와 레드랩게임즈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에 대한 소장을 접수했다. 엔씨 측은 "레드랩게임즈가 개발하고 카카오게임즈가 퍼블리싱한 '롬'이 자사 대표작 '리니지W'의 게임 콘셉트와 주요 콘텐츠, 아트, 시스템 등을 다수 모방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이 갖는 공통적, 일반적 특성을 벗어나 창작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자사 IP를 무단 도용·표절한 것이라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레드랩게임즈는 엔씨가 이미지를 부분적으로 짜깁기해 의도적으로 출시를 방해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신현근 레드랩게임즈 PD는 “오랫동안 전 세계 게임에서 사용해 온 '통상적 게임 디자인' 범위 내에 있는 내용”이라며 "최근 저작권 관련 이슈가 많아 이미 개발단계에서 게임의 법무 검토를 진행했으며, 일반적인 게임 사용자 인터페이스(UI)의 범주 내에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게임업계의 IP 분쟁은 최근 1년 동안 급증했다. 현재 소송전을 치르고 있는 게임사만 엔씨, 넥슨, 크래프톤, 카카오게임즈, 웹젠, 레드랩게임즈, 엑스엘게임즈, 아이언메이스 등 8곳에 달한다. 엔씨는 웹젠의 모바일 MMORPG 'R2M'이 '리니지M'을 표절했다며 지난 2021년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웹젠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엔씨 측 청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웹젠과 엔씨 모두 항소하면서 2심이 진행되고 있다. 재판부는 최근 당사자 간 상호 양해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조정회부를 통한 중재를 시도했으나 양측 모두 불응하며 최종 판결까지 가게 됐다. 엔씨는 지난해 엑스엘게임즈가 개발하고 카카오게임즈가 서비스한 '아키에이지 워'가 자사의 '리니지2M' 콘텐츠와 시스템을 다수 모방했다면서 저작권 침해와 부정경쟁행위에 대한 소송을 내기도 했다. 넥슨은 국내 개발사 아이언메이스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넥슨은 아이언메이스가 지난해 출시한 '다크 앤 다커'가 자사의 미공개 프로젝트 'P3' 개발 소스를 활용해 개발한 게임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2021년 아이언메이스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다크 앤 다커'가 출시되자 서비스 중지 가처분 소송도 냈다. 그러나 지난달 말 재판부가 가처분 소송을 모두 기각하면서 양사의 분쟁은 본안소송에서 가려지게 됐다. 본안소송의 첫 변론기일은 지난달 12일 열린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게임사 간 IP 분쟁은 지속될 전망이다. 실적 악화로 인기 IP가 업체 경쟁력을 좌우하게 되면서 핵심 IP를 지키는 일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인기 IP를 모방한 게임이 흥행할 경우 자사 매출에 타격을 입을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IP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 22일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 보고서'를 통해 게임 저작권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캐릭터 및 지도 디자인 등 시각적 요소에 대해서만 유사성을 판단했기 때문에 게임 장르 및 플레이 방식 등은 저작권 보호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이렇게 저작권 침해 범위 인정에 소극적인 판결이 다수 판례로 남아 있어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 개발 과정에서 내부적인 콘텐츠 검증 절차 및 제작자의 창작 윤리가 강화돼야 한다는 진단도 나왔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게임 서비스 전 회사 차원의 대대적인 점검을 통해 표절 의심을 살만한 콘텐츠, UI 등 요소를 필터링하는 작업이 꼼꼼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개발 과정에서 시간에 쫓기는 등 여러 이유로 표절을 하는 경우가 간혹 발생하는데, 산업 규모가 커진 데다가 이용자들의 수준도 높아진 만큼 게임 제작자들의 성숙한 자세가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