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아이가 있는 미래는 무엇으로 가능한가 『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

- 합계출산율 0.8, 0.7, 0.6…. - 인구절벽의 공포에서 사회개혁의 경로를 탐색하다! - 소멸하는 사회를 일으킬 ‘대한민국 대개조 프로젝트’

2025-02-26     김종혁 기자

매일일보 = 김종혁 기자  |  

  • 2023년 합계출산율 0.7, 그리고 다가올 0.6의 의미
  • 삶의 질 저하-저출생-지역축소-경기침체-국방력 저하
  • 재난의 도미노를 맞이할 대한민국
한국이 본격적으로 저출산·저출생 시대를 맞게 된 시기는 대략 2000년대 초반으로 짐작된다. 2004년 1.18이었던 합계출산율은 2015년을 기준으로 급격하게 감소해 2023년에는 0.7로 추락했다. 2015년 45만 명이던 출생아 수도 2022년까지 30만 명 이하로 43.2퍼센트 감소했고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로 분류된다.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통해 2006년부터 지금까지 총 4차례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내놓았지만 15년이 넘는 기본계획 기간 동안 출산율은 뚜렷한 반등 없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다가오는 미래에 한국은 곧 출산율 0.6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이 “초저출산·초저출생” 시대에 진입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다. 인구가 넘치는 시대에 사람이 줄어드는 게 무슨 문제일까. 아이가 태어나지 않으면 사람이 있는 모든 곳에 나비효과처럼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먼저 취업 활동 인구가 감소하면서 부양받아야 할 노인인구는 급증하고 이로 인한 청년들의 부양 부담은 가중된다. 군대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출생하는 남아의 수를 고려할 때 50만 대군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꿈이다. 지역 상권은 어떤가. 학교가 줄어듦과 동시에 주변 상권은 축소되고 수도 밀집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 낳을 수 없는 사람, 도심의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과의 간극 또한 더욱 깊어지고 있다. 저출생은 비단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마을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각자도생 사회로 몸살을 앓는 한국을 벼랑으로 떠밀고 있다.
  • 피로, 박탈, 포기, 불일치의 시대
  • 각자도생 권하는 사회
한국의 출산율은 왜 끝없이 하락하고 있을까? 1차~2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는 저출산의 이유를 ‘돌봄 공백’으로 보고 10년 동안 어린이집 수를 획기적으로 늘렸다. 3차 기본계획에서는 ‘비혼 경향의 확대’를 주요인으로 삼아 청년 지원이 확대됐다. 그러나 저자는 2006년에서 2020년에 이르는 1차~3차 기본계획이 공통적으로 ‘출산을 장려’하는 흐름을 보였다고 지적한다. 이는 압축적 근대화를 통해 산업사회가 된 한국 정부가 여전히 “국가가 투자할 테니 따라오라는 식의 투입 산출식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앞서 202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클라우디아 골딘 교수가 한국의 저출생에 관해 ‘한국이 고도 경제 성장으로 인한 부조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듯 한국이 근대를 벗어나 후기산업사회로 진입했음에도 정책이 시대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밝히는 저출생의 근본 원인은 터무니없이 낮은 삶의 질이다. 우리 삶의 질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는 물질적 “필요조건”과 삶의 만족도로 설명되는 “충분조건”으로 이루어지는데, 두 요소가 충족되면 “행복” 상태, 삶의 만족도만이라도 높다면 “적응” 상태,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으나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불일치” 상태, 두 요소 모두 가지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박탈” 상태에 놓인다. 한국에서는 중산층을 포함한 대다수의 국민이 불일치와 박탈 상태에 놓여 있어 만남과 가정보다 각자의 삶을 구제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비혼 지향 인구가 늘고 아이를 낳더라도 한 명만 낳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 돌봄 공백을 메꾸는 이는 누구인가
  • 출산의 주체, 여성의 삶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
돌봄 공백은 저출생의 또 다른 요인 중 하나다. 이에 한국에서도 영유아기 사회적 돌봄체계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어린이들을 저녁까지 맡아주는 기관이 대폭 확대되었으며 유보통합으로 유치원의 돌봄 책임 또한 강화될 예정이다. 그러나 “초등 돌봄 절벽”은 여전히 남아있다. ‘태권도 학원이 부모들의 구세주가 되었다’는 한탄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아이들이 저녁에 갈 곳이 없어지고 사교육비 지출이 점점 늘어나는 악순환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출산으로 인해 여성의 삶이 크게 바뀐다는 점이다. 아이가 가장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유아기에 먼저 육아휴직을 쓰는 이도 엄마이고, 엄마가 여건이 어려워지면 시어머니 혹은 친정어머니가 돌봄을 분담한다. 또한 출산은 여성의 성별 임금격차와 경력단절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는 여성의 취업 생애주기를 나타내는 ‘M자형 곡선’이 설명해준다. 남성의 취업 생애주기가 완만한 고원형을 보이는 것에 비하면, 여성은 출산을 기점으로 고용률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위험을 안고 출산을 결심한다. 공교롭게도 2015년을 기점으로 한국의 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하던 시기와 ‘독박 육아’라는 용어가 널리 퍼진 시기 또한 일치한다.
  • 0.6의 공포가 희망이 되려면
  • 삶의 질을 높이는 ‘대한민국 대개조 프로젝트’
이토록 문제가 산재해있다면,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까? 저자는 사회 소생의 단서를 서유럽 복지국가의 사례에서 찾는다. 프랑스, 영국, 독일, 스웨덴 등 서유럽 국가들의 출산율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확대됨과 동시에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들 국가는 사회적 돌봄체계를 치밀하게 설계하고 보완하는 것으로 출산율의 계곡을 통과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보편적 사회보장제도가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에서 저출산 문제가 대두된 이들과 달리 한국의 경우 사회적 돌봄체계와 보편적 사회보장제도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야말로 자원과 시간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대한민국 대개조를 감행해야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대개조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 책에서는 한 가지 방법으로 저출생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단언하지 않는다. 오늘날 저출생·저출산은 하나의 원인으로 수렴하지 않으며 여기저기에서 모인 갖가지 사연과 이유가 장기간 얽혀 저출생이라는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인구’ 중심의 관점에서 시선을 내려 ‘사람’을 중심으로 이 위기를 다시금 돌아보며 지금껏 실행됐던 정책을 하나하나 보완해가야 한다고 말한다. 늘봄학교, 유보통합과 더불어 사회적 돌봄체계를 완성하고, 주거 및 현금지원을 확대하여 비용 부담을 해소해야 한다. 성평등을 토대로 한 문화 환경개선 또한 중요하다.

여기에 일·가정 양립을 독려하는 가족친화경영이 더해져야 한다. 저자는 이로써 0.6의 공포를 피로와 경쟁, 차별로 몸살을 앓는 대한민국을 고치는 기회로 전환해보자고 말한다. 파편적인 노력들이 꾸준히 큰 그림을 만들어갈 때 희망은 조금씩 모습을 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저자는 믿는다.

저자 정재훈은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및 동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으며 독일 트리어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문재인 정부에서 국무총리실 저출생·고령화 특별보좌관, 국무총리실 양성평등위원회 위원, 법무부 양성평등위원회 위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지역상생분과 위원장을 지냈다. 현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자문위원단 위원, 보건복지부 사회보장위원회 기획전문위원, 법무부 양성평등위원회 위원, 교육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