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죽지 않고 살고 싶다” ‘울부짖는 소방관들의 처절한 절규’ 귀담아 들어야
2025-02-27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매일일보 |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소방본부(본부장 김주형)에 소속된 소방관 1,000여 명이 지난 2월 26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부근에서 ‘7만 소방관 총궐기대회’를 열고 “이제는 죽어서 영웅이 아닌 평범한 엄마·아빠이고 싶다”라고, “대규모 인력 충원하라”며, “현장의 목소리를 좀 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이 외친 “죽지 않고 살고 싶다”라는 처절하리만큼 간절한 울부짖음에 소방관들이 처한 열악한 근무 여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소방과 경찰 등 제복 공무원들이 아낌없이 흘린 피와 땀 그리고 눈물 덕분에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수 있고, 이들의 쏟아부은 열정과 투혼 덕분에 편안한 삶과 행복한 일상을 누리고 향유하고 즐기며 살아간다. 이들의 아픔과 애환 그리고 한숨과 토로를 경청하고 한(恨) 서린 목소리를 당연히 귀담아 들어야할 마땅한 일이다.
지난해 12월 1일 제주도 서귀포의 한 감귤창고 화재 현장에서 불을 끄던 제주동부소방서 표선119안전센터 근무 고(故) 임성철(향년 29세) 소방장(특진)이 순직한 지 두 달도 못 된 올해 1월 31일 경북 문경의 한 육가공 공장 화재 현장에서 인명 구조를 하던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근무 고(故) 김수광(향년 27세) 소방장(특진)과 고(故) 박수훈(향년 35세) 소방교(특진) 등이 순직한 것과 관련, 전공노 소방본부의 요구를 재차 전하기 위한 자리다. 집회에 참가한 소방관들은 “불과 두 달 전 제주에서 한 소방관을 떠나보내고 쓰라린 가슴을 달래기도 전에 경북 문경 화재로 두 분의 젊은 소방관들을 또다시 보낸 우리 가슴이 찢어질 듯 시려온다”라고 토로하고 거룩한 희생으로 유명을 달리한 이들을 애도한 것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선을 넘나드는 위험을 무릅쓰고 재난 현장에 뛰어들었다가 안타깝게 희생된 소방관들의 사연은 비단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소방공무원 순직은 매년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온라인 순직소방관추모관에 따르면 1945년부터 이날까지 순직한 소방관은 총 428명이나 된다. 소방청에서 지난해 7월에 발간한 ‘2023 소방청 통계연보’의 ‘연도별 소방공무원 순직․공상자 현황(2012~2022)’에 의하면 최근 11년간 47명이 순직하였고, 5,235명이 공상을 당해 무려 7,282명이나 숨지거나 다쳤다. 지난해 순직·공상한 소방공무원만도 1,336명으로, 2022년(,1083명) 대비 23.3%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연도별 순직·공상자 수는 2018년 830명, 2019년 827명, 2020년 1,006명, 2021년 936명 등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소방관을 잃을 때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다짐했지만, 소방공무원의 희생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4월 1일 지방공무원 신분이던 소방관을 국가공무원으로 전환했다. 그런데 소방 분야 인사와 예산은 중앙정부 권한이 아닌 지방정부 권한으로 그대로 남겨둔 탓에 여태 온전한 국가직이 아니라는 게 일선 소방관들의 볼멘 주장이다. 선출직인 지방자치단체장 측에서는 가용 예산을 소방관 충원이나 소방 장비 확충보다는 선거 표심을 잡기 위해 선심성 사업에 쓰고 싶은 충동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소방청 통계를 보면 2018년 5,600여 명에 달했던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소방관 신규 채용 인원이 국가직 전환 이후부터 2022년 3,814명, 2023년 1,560명, 2024년 1,683명 등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번 집회를 계기로 정부는 인력 증원 등 소방관들의 요구 사항을 면밀하고 촘촘히 살펴 개선이 필요한 점은 시급히 고치고, 검토가 좀 더 필요한 부분은 소방관들과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고 발전적 대안을 찾는데 심도 있는 논의를 해야 한다. 안타까운 순직에 따른 사회적 공분이 나타나는 것도 잠시, ‘반짝 관심’에 그친 채 실질적인 대책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비등한다. 전문가들은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열악한 근무 환경마저 개선되지 않는다면 순직·공상 사례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매년 화재 신고 등이 늘어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이처럼 매년 안타까운 사례가 반복되는데도 불구하고, 인력은 턱없이 부족해 확충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도 현장에는 인원이 없어 연가를 가기 위해서는 비번인 직원이 대신 근무를 서줘야 하기에 ‘언감생심(焉敢生心)’이자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고 핀잔할지 모르지만, 서둘러 인력 충원을 통해 현재의 3조 3교대 근무 체제를 최소한 경찰 수준의 4조 2교대 근무 체제로 과감히 바꿔 나가야 한다. 현재 경찰은 2021년부터 부분적으로 5조 3교대 근무 체제를 도입 운영하고 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또한 극한 재난 현장에서 활동 중 위험에 처한 소방구조대원을 구하기 위한 미국의 ‘재난 현장 표준작전 절차 수립에 관한 규정(SOP)’과 ‘산업안전보건청 규정’ 등을 녹여 담은 ‘구조대원 구조대(RIC │ Rapid Intervention Crew)’도 서둘러 제도화하고 단순한 ‘지휘관의 재량’에 맡길 게 아니라 ‘강행 의무 규정’으로 적극 시행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인사권도 예산권도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만 더한다. ‘소방의 인사 소방의 손으로’ 그리고 ‘소방의 예산 소방청’에 의해 이뤄지길 바란다. 진정한 국가직 전환을 위해서는 소방 사무를 자치사무에서 국가사무로 바꿔 나가야 한다. 더 이상 ‘동정받는 소방이 아니라 동경받는 소방’으로 가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차제에 국민의 안전을 위해 소방관이 생명을 내던져야 하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처우개선과 안전담보를 위한 입법·정책적인 대책이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 우연처럼 오늘(2월 27일 오전 11시) 서울지방보훈청에서 국가보훈부 주관으로 국방부, 경찰청, 소방청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몰·순직 군경 및 공무원 자녀와 그 보호자(히어로즈 패밀리) 지원 강화를 위한 첫 관계부처 합동 실무회의가 개최된다. 목숨 걸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제복 영웅들의 헌신을 기리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안타깝게 순직한 영령들의 거룩한 희생을 기리며 추모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