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정조준한 홍콩 ELS 사태...'감독' 못하고 '제재'만 치중한 금융당국
손실 규모만 1조원 돌파...80% 이상 시중은행이 판매
불완전판매 주기적 되풀이...금감원, 뒷북 대응도 여전
2025-02-28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 손실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운데 H지수가 현수준을 지속할 경우 투자자들의 원금 손실액은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금융감독 당국은 다음주 주말 전후 금융사의 자율배상안을 발표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일각에선 피해자 배상에만 초점을 둔 금융당국이 뒷북 대처로만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의 금융권 자율 배상안과 관련해 “다음 주 주말 전후로 준비한 내용을 설명하겠다”고 했다.
이 원장은 28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연구기관장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내부적으로 거의 (자율 배상안) 초안은 마무리가 됐다. 각 부서별로 의견을 구하면서 점검 중이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 원장은 “금융소비자보호법상 (홍콩 H지수 ELS 분쟁 건에 대해) 분쟁조정위원회의 안건으로 상정하는 게 좋겠다라는 게 저를 비롯한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의 생각”이라며 “분조위를 개최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다음 주 내로 (자율 배상안을) 발표할 수 있으면 해보고, 안되면 다음 주 주말 전후에 (발표하겠다)”고 했다.
통상 금감원은 분쟁 조정 민원이 접수되면 해당 사안에 대한 사실 조사를 거친 후 합의가 어렵다고 판단하면 이를 분쟁조정위원회에 회부한다. 분쟁조정위원회는 민원인과 금융회사가 조속히 자율조정에 따라 합의할 수 있도록 불완전판매 유형별로 책임분담 비율 등을 결정한다. 금융회사는 이를 바탕으로 최종 배상에 착수한다.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23일까지 H지수 ELS의 만기상환 금액은 약 2조1130억원으로 그중 9725억원이 상환됐으며, 손실금액은 1조1405억원으로 손실률이 5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82%가 은행권에서 판매된 것을 감안하면 은행권의 손실규모는 9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홍콩 H지수 ELS 총 판매액 19조3000억원 중 15조9000억원여가 은행에서 팔렸다는 점에서 은행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초고령층 상대로 한 판매가 유독 많았던 데다 실적 반영 기준 등이 알려지며 판매 창구를 차단하고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금융당국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 역시 뒷북대처만 이어오며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 실제 금융당국이 선제적 감독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이번 금감원도 비껴가지 못했다. 더욱이 여러 차례 위험 사례와 경고가 있었음에도 미리 대처하지 못했다는 목소리다.
이미 홍콩H지수는 지난 2016년 폭락사태를 겪은 바 있다. 이후 홍콩H지수 ELS 상품이 대거 판매되기 시작하자 투자자 보호를 위해 금융당국이 판매 관행을 점검할 것을 촉구하는 분석이 나왔던 바 있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2018년 작성한 보고서에서 “ELS는 다른 금융투자상품에 비해 공모형 발행 비중이 높아서 일반 투자자의 접근성이 높은 금융투자상품으로 자리잡았다”며 “감독당국은 급격한 쏠림현상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특히 신규 투자자에 대한 불완전 판매가 일어나지 않도록 판매 관행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처럼 금융소비자 피해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데도 불구하고 재발하는 데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사후 제재와 처벌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스템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은행의 고위험상품 판매를 금지하고 손해 배상을 추진하는 반복적 사후약방문으로는 효과가 미비하다는 것이다. 실제 2019년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등 사모펀드 사태 이후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고난도 상품(원금의 20% 이상 손실 가능성이 있는 상품) 판매 금지를 결정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상품 투자자를 보호하겠다면서 고객이익 보호 중심의 영업을 전제로 고난도 금융상품의 신탁 판매 허용을 요청해왔고, 결국 금융당국은 결정을 선회했다.
이번 역시 은행의 ELS 판매 중단으로 이어졌지만, 이전과 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금융소비자의 투자 선택 옵션이 좁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일괄적 판매 중지보다는 원금손실을 방어할 수 있는 안전장치 마련 등 방향으로 대처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령층 등에 대한 판매 가이드라인 보완은 물론이고, 집단소송제도 마련,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 등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 감독 방식에 대한 변화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문제가 될 수 있는 체계부터 감독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핵심성과지표(KPI) 배점, 직원의 접대 논란 등이 언급된다.
이번 홍콩H지수 ELS 사태가 터진 후 은행의 판매 행태가 실적 반영 중심으로 이어져 온 사실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은행들은 뒤늦게 핵심성과지표(KPI) 배점에서 해당 상품 관련 배점을 배제하는 등 조치에 나섰다. 금융당국이 KPI를 제대로 들여다봤더라면 과도한 판매 행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책임분담안이 나오면 검토 분석 작업을 거쳐 자율배상이나 추가 대응 등의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며 "금융사와 투자자 모두가 납득할 만한 배상안이 나오지 않을 경우 장기간 법적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