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주총시즌 개막…‘밸류업’ 바람에 더 커지는 주주 목소리

‘밸류업’ 올라탄 소액주주들...주주제안 등 영향력 커져 경영권 분쟁소송도 증가...상장사 주주환원도 활발해져

2025-03-03     이광표 기자
정은보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3월 주요 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도래한 가운데 소액주주들이 직접 주주가치 제고에 뛰어들고 있다. 정부가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을 내놓은 것이 발단이 됐다. 일반주주 이익 보호를 정부가 천명한만큼 소액주주의 영향력은 점차 늘어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정기주총 시즌과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맞물리면서 행동주의펀드를 비롯한 소액주주들의 주주제안도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기업의 주주들은 주주명부열람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주주제안을 예고하고 있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022년 11건, 2023년 18건이었던 소액주주연대 주주제안은 올해 2월말까지 최소 20건이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주제안이란 일반주주들이 주주총회에 의안을 직접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소액주주들이 회사의 의사결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제도 중 하나다. 주주총회 6주 전까지 요구사항을 회사에 제출하면 주총에서 해당 의제를 다루게 된다. 배당 확대, 이사 및 감사 선임 등이 주주제안의 단골 메뉴다.

소액주주들의 주주제안이 활발해진 이유 중 하나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조치들이 만들어지면서다. 소액주주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1400만명으로 급증했다. 이후 주식시장에 급격히 늘어난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자본시장 제도가 정비됐다. 불법 공매도 적발·처벌 강화, 물적분할에 따른 소액주주 피해를 막기 위한 주식매수청구권 도입 등이 대표적이다.
 
경영권분쟁 소송 공시도 늘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2월까지 유가증권 및 코스닥시장에서 나온 경영권분쟁 소송 공시는 총 44건으로 지난 10년 평균(21.4건)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경영권 분쟁은 통상 기업의 경영권을 둘러싸고 주주 간 혹은 주주와 전문경영인 사이에 발생하는데 주주명부열람 등의 소송도 경영권분쟁에 해당한다. 올해 경영권분쟁 공시 중에선 주주명부열람 사유가 9건 포함됐다.
 
관련 공시가 증가하면서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주주제안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주주명부열람 역시 주주제안의 선행지표로 볼 수 있다. 통상 주주명부 열람 신청은 경영권 분쟁 과정의 초기에 발생한다. 신청자가 자신의 우호 지분을 파악하고 의결권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 강해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주주명부 열람 청구는 소액주주가 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행동 중 하나”라면서 “주주들 간 결집력을 높일수 있기 때문에 주주명부열람을 청구한 것만으로도 지배주주를 견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소액주주들이 입김이 점차 세지면서 코스닥 기업 중 일부는 위력을 실감 중이다. 소액주주연대는 적극적 주주행동을 통해 코스닥 기업과 소송까지 불사하며 갈등을 겪고 있어서다.

대양금속 소액주주연대는 회사 측에 '주주명부열람등사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대양금속 소액주주연대는 자회사인 영풍제지 주가 조작 사태로 큰 피해를 보고 있으며, 현 경영진이 회사의 가치를 훼손해 금전적인 손실과 정신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영두 대양금속 소액주주연대 대표는 "3월 대양금속 주주총회에서 주주권리를 행사하고, 피보전권리와 보전의 필요성을 이유로 주주명부열람등사 가처분을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대양금속도 반격에 나섰다. 회사는 대형 법무법인을 선임해 소액주주연대를 상대로 대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골판지원단·상자 판매 업체인 삼보판지 소액주주들도 경영진을 상대로 업무상배임 의혹을 제기하며 내용증명·고발장 등을 제출했다. 소액주주연대는 삼보판지가 사업기회를 유용해 류진호 삼보판지 대표이사의 특수관계 법인에게 제공했고 그 결과 회사에 700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에도 소액주주는 존재했지만, 회사 측는 소액주주들이 '눈엣가시' 정도였다. 소위 '주총꾼'(소란을 피우며 주총을 방해하는 사람) 정도로 취급하는 관행이 팽배했던 것도 사실이다. 소액주주의 의견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소액주주의 달라진 위상은 기업의 분위기에서도 알 수 있다. 적극적 주주환원 기조에 동참하며 배당을 늘리는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23년 결산 배당을 공시한 코스피 기업 287곳 중 16곳은 2012년 배당이 없었으나 지난해 신규로 배당을 책정했다. 코스닥 기업의 경우 284곳 중 37곳이 신규로 배당을 결정했다. 인화정공과 하나투어, 동양생명은 신규 배당임에도 연말 주가 기준 배당수익률 19.33%, 9.60%, 8.83%를 기록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우리나라 경제가 구조적인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면서 주가 성장이 느려질수록 투자자들은 기업가치를 적극적으로 제고해 주가수익률을 높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진다"며 "앞으로도 펀드 등 주주행동주의 활동의 증가추세가 지속해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