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변심한 북한 마음을 돌려라

김윤규 '덫'에 신음하는 현대호 앞날 '캄캄'

2006-10-07     권민경 기자

통일부 "감사보고서 부실, 현대 책임져라"
북, 백두산 관광 현대 배제, 관광공사에 손짓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의 남북협력기금 유용 논란에 대해 통일부가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서면서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이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현대그룹이 김 부회장을 퇴출 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감사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10월6일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현대그룹에게서 지난 4일 받은 '경영 감사보고서'를 검토한 결과 '김윤규가 남북경협기금을 유용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 고 설명했다. 이어 "현대는 이러한 기업 내부보고서가 언론에 사전 유출된 점에 대해 명확히 그 경위를 해명해야 할 것이며 정부와 국민에 대해서도 사과해야 하고, 응당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내부 감사보고서를 근거로 지난 5일 김 전 부회장을 대표이사직에 이어 부회장직까지 박탈하며 현대에서 완전히 퇴출시킨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 한편 지난 5일 오후에는 북측이 현대아산에 아무런 통보조차 없이 한국관광공사에 `연내 백두산 시범관광을 실시하자`는 제의를 한 것으로 알려져 현대가 대북사업에서 배제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항간에는 현 회장의 일선 후퇴설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변심한 북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대북사업에 새로운 북한통을 내세워야 한다는 게 그 이유 중 하나다. 현대 경영전략팀 관계자는 김윤규가 금강산 현지 사업소 금고에 보관된 현금을 2003년 10월부터 2005년 3월까지 인출해 개인 용도로 사용한 후 금강산 도로 공사비로 허위 회계 처리하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밝힌바 있다.또 현대측은 김윤규가 현금을 인출하면서 협력기금이 투입되는 도로공사비 명목으로 회계 처리하였다는 이유로 감사보고서 상에는 '남북경협지금 관련' 이라고 표현했다고 거론했다. 그러나 통일부의 검토 결과, 김 전 부회장은 비자금 조성을 위해 2003년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5차례에 걸쳐 모두 50만 달러(한화 5억여 원)를 금강산 현지 사업소 금고에서 현금으로 인출했다. 특히 집중적으로 돈이 인출된 시기를 보면 2003년 10월 20만 달러(한화 2억여원), 2004년 23만7천달러(한화 2억3천여만원)였다. 2005년 1월 이후 인출한 돈은 6만4천달러(한화 6천여만원)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통일부가 수출입은행을 통해 금강산관광지구 도로공사 중도금으로 현대아산에 한화 14억4천 200만원을 입금한 시점은 2004년 12월31일. 김 전 부회장이 돈을 인출한 시점과 협력기금의 지급 시점을 고려하면 협력기금을 비자금으로 전용할 수 없다는 게 통일부의 설명이다.

정부, 현대에 '불쾌'

그럼에도 현대그룹 감사팀이 '남북경협기금 관련'이라고 표현한 이유에 대해, 통일부는 현대 쪽의 설명을 덧붙여 김 전 부회장이 현금을 인출하면서 협력기금이 투입되는 도로공사비 항목으로 '허위' 회계처리를 했다는 것이다. 통일부의 주장대로라면 현대그룹 감사팀은 회계장부에 나타난 서류상의 수치만 보고 '남북경협기금 관련'이라고 단정해 버린 셈이 된다. 통일부는 정부 업무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으며 사실관계에도 부합되지 않은 내용을 담은 기업의 내부보고서가 정부에 보고 되기도 전에 언론에 유출된 점과 현대 측이 감사결과보고서에 '남북경협기금 관련'이라는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마치 남북협력기금이 유용 된 것처럼 보인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부로서는 '남북협력기금=비자금'이라는 오명에서 한발 벗어남으로써 도덕적, 법적 책임에서는 일단 급한 불은 진화했지만 앞으로 감사원 감사 등이 남아 있어 여전히 남북협력기금 문제는 정치권의 쟁점이 될 전망이다.

궁지에 몰린 현대 '사면초가'

현대그룹은 통일부 발표에 당혹스러워하면도 곧바로 보도자료를 통해, 일단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현대는 "내부감사보고서에서 '남북경협기금 관련 비자금 조성 50만 달러'라고 표시된 부분은 김 전 부회장이 남북협력기금이 관련된 금강산 도로포장공사에서 회계조작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이지, 남북협력기금을 직접 유용했다는 뜻은 아니었다"라며 "적절치 못한 표현으로 해당기관 및 국민 여러분께 오해를 불러 일으켜 송구스런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대는 "김 전 부회장이 2003년 10월부터 2005년 3월까지 자재대금 조정, 공사 허위계약, 입금분 미처리 방식으로 조성한 비자금 규모는 총 70만3천 달러인 것으로 내부감사에서 드러났다"며, 김 전 부회장에 대한 인사조처의 정당성을 확인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남북협력기금 관련 부분에 있어 표현상 잘못은 있지만, 보고서 자체가 부실감사는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비자금이 협력기금 지급 이전에 조성됐다는 통일부의 설명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현대는 "금강산 현지에서 돈을 빼내 비자금을 만든 시기는 대부분 2004년 12월 31일 이전이지만, 김 전 부회장이 회사 돈을 먼저 빼 쓴 뒤에 나중에 협력기금에서 지원된 금강산 도로 공사비를 부풀린 다음, 구멍을 채워 놓았다"고 주장했다. 즉 문제가 되는 것은 액수이지 언제라는 시점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가 한발 물러서기는 했지만 통일부의 주장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향후 현대와 통일부간 남북협력기금 유용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통일부의 반격(?)에 현정은 회장은 사면초가에 몰려있다. 김 전 부회장을 공식 퇴출시킨 근거가 감사 보고서였는데, 통일부가 조사결과 이 보고서가 사실과 맞지 않게 작성된 것이라 주장함에 따라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대는 그간 감사 보고서 자체도, 김 전 부회장 퇴출에 관련한 것도 모두 회사 내부 문제임을 강하게 주장해 왔는데 정작 보고서에는 '남북경협기금'이라는 표현을 써 정부 차원의 문제와 연계시킴으로써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내뱉은 꼴이 됐다. 또 김 전 부회장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확하고 솔직하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는 식의 대응으로 사태만 악화시켰다는 지적까지 일고 있다. 처음 김 전 부회장의 비리관련 소식이 보도됐을 때도 현대 측은 오히려 언론에 의해 자신들의 입장이 난처해졌다는 식의 태도를 취했고, 이번에 감사보고서가 유출된 경위에 대해서도 "도대체 어떤 경로로 내부 보고서가 새어 나갔는지 모르겠다" 며 미숙한 처리방식을 드러냈다. 더욱이 이런 상황에서도 현대 측 관계자는 "회사는 김 전 부회장을 끝까지 보호하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뜻하지 않게 감사보고서까지 언론에 유출돼, 어쩔 수 없이 김 전 부회장을 완전히 해임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태도를 보였다.

북한, 현대 따돌릴 속셈인가.

이렇듯 현대의 어정쩡한 내부감사보고서와 대처로 인해 현정은 호의 대북사업은 깊은 수렁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 통일부와의 마찰도 문제지만 당장, 북측의 태도 역시 현대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북한은 지난 5일 백두산 시범관광과 관련해 한국관광공사 쪽에만 연락을 취한 것으로 밝혀졌다. 관광공사와 현대아산은 지난 7월 북측과 연내 2차례 이상 백두산관광을 실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북측이 현대엔 아무런 통보 없이 관광공사에만 전화통지문을 보내 뒷말이 무성하다. 앞서 북한이 개성관광을 롯데관광에 제의한 것을 두고 개성에서 현대를 떼어내려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여기에다 북측은 개성 부근 골프장 건설과 관련해선 현대아산 대신 국내 중소기업에 사업권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사업의 상징이었던 금강산 관광도 난항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북측이 지난달부터 관광객 수를 절반인 600명으로 줄인 뒤 아직까지 원상복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남북경협에 있어 북한이 더 이상 현대 측에만 독점적 지위를 허용하지는 않을 것임이 확실해 보인다고 관측했다. 북한에 외면당하고 정부로부터도 싸늘한 시선을 받게 된 현대그룹은 지금 대북사업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의 위기에 직면해있다. 김 전 부회장 파문과 관련해 북한과의 마찰이 시작됐던 지난 8월 현 회장은 문제를 신속히 정리하고 원칙을 고수하며 떳떳이 대북사업의 주체로 나설 뜻을 밝혔지만, 현대그룹과 현 회장의 뜻대로 대북사업이 흘러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