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사면 시행 금융취약층 숨통…가계부채 자극·성실차주 역차별 우려도

역대급 신용 구제에 연체자들 신용평점 줄줄이 상승 총선 앞두고 민생 금융지원 표방한 포퓰리즘 논란도

2024-03-12     이광표 기자
김주현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정부가 2000만원 이하 빚을 전액 상환할 경우, 연체 기록을 삭제해주는 이른바 ‘신용사면’을 12일부터 실시하기로 했다.

신용사면은 최대 298만명에 달하는 서민 소상공인에 대한 연체 기록 삭제해줌으로써 정상적인 금융활동을 가능케 하는 조치다. 신용점수 상승으로 카드 발급이나 추가 대출 등 일상적인 금융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적으로 금융권에서 대출이 3개월 이상 연체되면 신용정보원이 최장 1년간 연체 기록을 보존, 금융기관과 신용평가사에 이를 공유해 최장 5년간 활용한다. 이 경우 추가 대출이나 신용카드를 발급할 때 불이익을 받아 왔다. 다만 이번 조치를 두고 논란은 여전하다. 일각에선 정부에서 4·10 총선을 앞두고 잇따라 민생금융지원책을 내놓고 있는데 단순히 민심을 끌어올리려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12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이날부터 서민·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신용사면이 시행됐다. 이번 조치로 2021년 9월 1일부터 올해 1월 31일까지 소액(2000만 원 이하) 연체가 발생했으나 5월 31일까지 연체금액을 전액 상환한 경우 신용회복을 지원한다. 대상기간 중 소액연체가 발생한 자는 개인 약 298만 명(NICE 기준), 약 31만 개인사업자(한국평가데이터 기준)다. 2월 말 기준 연체금액을 전액 상환한 자는 개인 약 264만 명, 개인사업자 17만5000이다. 개별 개인신용평가회사나 개인사업자신용평가회사 홈페이지에서 신용회복 지원 대상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며, 대상자에 해당하면 별도 신청 없이 신용평점이 자동 상승한다. 아울러 신용회복위원회나 새출발기금 채무조정을 이용 중인 차주 중 변제계획에 따라 1년간 성실상환한 약 5만 명에 대한 채무조정 정보가 조기 해제돼 불이익이 해소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상생금융을 압박하며 소상공인과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2조1000억 원+α 규모의 민생금융지원책을 이끌어낸 바 있다. 2월 초 개인사업자 187만 명에게 1조3587억 원의 이자환급이 이뤄졌으며, 연내 1422억 원의 추가 환급이 이뤄질 예정이다. 또한, 이달 말 6000억 원 규모의 취약계층 지원 자율프로그램이 발표돼 다음 달부터 지원이 이뤄진다. 여기에 금융당국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재정을 활용해 소상공인 대상 2금융권의 이자환급 계획도 발표했다. 2금융권에서 금리 연 5% 이상 7% 미만의 사업자대출을 받은 개인사업자나 법인 소기업을 대상으로 최대 150만 원의 이자환급이 지원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성실하게 빚을 제때 갚은 소상공인과 ‘역차별’ 문제와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연체하지 않으려 노력해온 이들 입장에서는 황당하다는 것이다. 앞서 1999년과 2013년, 2021년 신용사면이 단행된 바 있는데 불과 3년 만에 또 비슷한 조치가 이뤄지면서 경기가 어렵거나 금리가 높으면 정부가 또 비슷한 정책을 내줄 것이란 잘못된 신호를 보낼 우려가 크다. 도덕적 해이를 부추겨 시장 질서를 훼손하거나 오는 4월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정책이란 비판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정부는 “어려움에 부닥친 서민·소상공인의 상황을 감안해 숙고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신용사면은 채무 상환자만 대상으로 하기에 오는 5월까지 채무 변제를 독려하는 효과가 있다는 입장이다. 또 ‘총선을 앞둔 포퓰리즘식 정책이라는 비판’에 대해 “도덕적 해이 우려가 발생할 수 있지만 예외적인 지원책인 만큼 그럴 수준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문제는 잇따른 소상공인 지원책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신용사면의 경우 도덕적 해이 문제를 비롯해 형평성 문제, 가계부채 문제로의 확대 등이 지적되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이번 신용사면으로 인해 자칫 신용점수 인플레 현상이 발생해 기존 고신용 차주에 피해가 갈 우려도 있다"며 "은행들이 등급을 나누고 금리를 매기는 데는 신용평점을 기준으로 마진을 이만큼만 받아도 충분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미 연체 이력이 있는 차주들의 평점이 높아지면서 데이터 착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저신용 차주들의 신용평점이 높아지면서 리스크 비용을 더 얹게 될 것이고 그만큼 기존 고신용 차주들의 대출금리는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금융위 관계자는 "코로나19라는 특수한 경제적 상황이 있었고, 사회적으로 경제 활동을 못 하는 상황에서 계속 두기보다는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게 바람직하다"며 "지원 대상을 연체액 2000만원 이하 소액으로 하고, 전액 상환한 대상자만 지원하기로 하면서 도덕적 해이 문제는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번 조치로 기존 연체 이력이 있었던 차주가 더 좋은 조건으로 대출할 수 있게 되면서 모럴해저드에 대한 우려도 있을 수 있지만, 어떤 정책이든 양면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이런 분들이 정상적인 경제생활로 복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도 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런 조치(신용사면)를 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