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K-산업, 반복되는 기술탈취·유출에 골머리…제도 정비 시급
전 산업 분야로 분쟁 확전…엔씨-레드랩, 한화오션-HD현대 등 공방 치열 해외 유출 급증세에 안보 위협 우려도…사법체계 보강 등 포괄적 대응 필요
2025-03-13 이태민 기자
매일일보 = 이태민 기자 | 핵심 기술 탈취와 아이디어 도용 여부를 둘러싼 기업 간 분쟁이 전 산업 분야로 확산되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기술 유출이 산업 경쟁력 저하와 안보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계 차원의 대응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법체계 정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3일 산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들이 자사 핵심 기술과 아이디어 탈취 여부를 놓고 물밑 공방전을 펼치고 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최근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수주와 관련한 군사 기밀 유출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임원 개입설'을 주장하며 고발을 감행한 한화오션에 대해 HD현대중공업은 수사 기록 등을 짜깁기해 사실 관계를 왜곡하고 있다는 입장을 냈다. 엔씨소프트와 레드랩게임즈는 신작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롬’의 ‘리니지W’ 아이디어 표절 여부를 두고 법적 분쟁을 예고한 상태다. 엔씨 측은 ‘롬’이 MMORPG 장르의 공통적·일반적 특성을 벗어나 창작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리니지W의 지식재산권(IP)을 도용·표절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레드랩게임즈는 “통상적인 게임 디자인 범위 내에 있는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첨단기술 개발 속도가 빨라지면서 관련 피해 사례도 급증하는 추세다. 경찰이 수사해 검찰에 송치한 기술 유출 사건은 지난 2021년 89건에서 2022년 104건, 지난해에는 149건으로 매해 급증하고 있다. 해외로 기술 유출이 된 사건도 많이 증가하고 있다. 2021년 9건에서 2022년 12건, 이어 지난해에는 22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국가 핵심 기술 유출도 최근 6년간 36건 발생했다. 전체 사건 중 해외 유출 사건 비중은 10.1%에서 14.8%로 확대됐다. 해외로 유출된 피해 기술은 △디스플레이 △반도체·기계 △조선·로봇 순으로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기술을 유출하는 국가는 중국이 가장 많았다. 그러나 실제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고 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1심 사건 총 33건 중 무죄(60.6%)와 집행유예(27.2%)가 87.8%를 차지했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기술 유출 관련 범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365명 중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73명(20%)에 불과하다. 이처럼 산업계의 날 선 기술유출 공방전은 국내외 업체들의 기술개발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기술개발의 경우 손에 잡히지 않은 무형자산으로써 해당 인력이 이직할 경우 기밀 유출에 대한 판결이 애매한 상황이다. 산업계에서는 법적 처벌을 강화해 국내외로 기술 탈취가 반복되는 현상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업 생존과 직결된 핵심 기술 유출로 소송을 겪는 경우 결국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미국, 영국 등 주요국들은 핵심기술 경쟁력을 국가안보의 개념에 포함시키고 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집행유예나 단기 실형에 그치는 등 처벌이 미비하다보니 고의적으로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사례도 적잖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