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구책 마련해도 줄줄 새는 핵심기술…"국가 차원 대응 나서야"
2025-03-13 이태민 기자
매일일보 = 이태민 기자 | 국내 기업들이 자사 핵심기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기술 탈취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기술 탈취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선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3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자사 특허 출원을 늘리는 것은 물론 자체 지식재산권(IP)을 상품화하는 등 핵심기술 사수에 힘쓰고 있다. 첨단기술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데다가 기술 침해가 매출 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기술 유출에 따른 기업의 피해는 25조원에 달했다. 퇴직자·현직자에 의한 유출이 가장 많았으며, △업무제휴·기술협력에 의한 유출 △사이버 해킹에 의한 유출 △제품·기술 수출에 의한 유출 △대외투자에 의한 유출 등이 대표적 경로로 꼽혔다. 최근에는 인터넷 암시장으로 통하는 ‘다크웹’을 활용하는 한편 '반도체 복제공장'처럼 인력을 이용해 기술유출을 시도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전직금지약정’을 피하기 위해 직접 채용이 아닌 자문·연구용역 형식으로 위장하거나, 기술 탈취 목적으로 우리 기업을 통째로 인수하는 등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형까지 발견되고 있다. 이처럼 기술 유출 경로가 다양해지고 수법 또한 고도화되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가장 큰 문제는 기술 탈취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특허 출원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 10곳 중 4곳 이상이 기술탈취 피해를 경험했지만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 이유로 기술탈취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워서(78.6%)라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해외 주요국에 비해 관대한 양형기준도 기술 탈취가 근절되지 않는 원인으로 꼽힌다.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에 따른 피해 규모에 비해 양형기준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국가 핵심 기술 유출 범죄를 ‘간첩죄’ 수준으로 처벌하고 있다. 지난 2022년 11월 중국국가안전부 소속 요원이 미 제너럴일렉트릭(GE)의 항공 기술을 탈취하려다 실패한 사건에 20년 중형을 선고한 게 대표적이다. 영국 역시 지난해 말 제정한 국가보안법에서 ‘간첩범죄’를 3가지로 규정하고 보호대상 정보 유출에 ‘최대 종신형, 상한 없는 벌금 부과’를 명문화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여전히 집행유예나 1~2년 단기 실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기술탈취를 중범죄로 규정하고 배상 책임을 강화하는 등 제도 정비에 나서고 있지만 즉각적으로 실효성을 기대할 만한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총 일곱 차례의 산업기술보호위원회를 통해 기술유출자에 대한 처벌 강화가 핵심인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점검했다. 이 개정안에는 산업스파이를 처벌하고 기술 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한도를 기존 3배에서 5배, 벌금을 15억원에서 65억원으로 각각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지난 1월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되면서 법 개정 논의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다만 기술 탈취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를 기존 3배에서 5배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안이 최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피해구제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평가다. 정인식 특허청 산업재산보호협력국장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효과적으로 운용되려면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증거들을 손쉽게 수집할 필요가 있다"며 "후속 조치로 특허침해소송에서 한국형 증거수집제도 도입 등의 제도개선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