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난 이명박, 꿈 깨진 손학규
손학규, 대권주자 물 건너가나
2006-10-07 권민경 기자
청계천 인산인해, 경기축제 인적 드문
2년 3개월의 공사기간을 들여 새롭게 탄생한 청계천, 지난 10월 1일 청계천 개통식은 이명박 서울 시장의 정치이력에 하나의 전환점이 되는 날이었다. ‘이명박’을 외치는 시민들의 응원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왔고, 열성 아줌마 부대까지 등장해 그의 높은 인기를 실감케 했다. 새롭게 태어난 청계천처럼 이 시장의 정치인생 역시 새로운 물줄기를 탄 것 같았다. 반면 한나라 당내 차기대권주자로 부각돼 왔던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행보는 이와는 사뭇 달라 눈길을 끈다. 손 지사가 올해 초 야심 차게 선언했던 ‘경기방문의 해’ 가 예상보다 턱없이 부족한 실적을 거두며 빈축을 사고 있다. 10조원이 넘는 경제파급효과와 경기도만의 특색있는 문화산업 육성이라는 사회, 문화적 비전은 계획만 원대했던 ‘꿈’으로 끝나버리는 듯하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경기도가 실속 없는 축제에 낭비한 예산을 놓고 질책이 이어져 손 지사의 입지는 더욱 불안하게 됐다. 30만이 넘는 시민들이 찾아와 복원된 청계천의 모습에 감탄사를 내지르고, 이 시장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칭찬한 이날은 흡사 이명박의 대권출정식과도 같았다. 물론 이 날 한 시민의 추락사와 안전사고가 뒤따라 청계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청계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 그리고 수질오염, 장애인 접근의 어려움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과 함께 일단 이 시장은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이 사실이다. 한껏 탄력을 받은 이 시장은 최근 “물류비용 절감과 고용·내수확대, 국토균형개발 효과가 크다”는 이유를 들어 ‘경부(京釜) 운하’건설을 다음 공약으로 내걸었다. 일각에선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내건 행정수도이전 공약 이상으로 큰 대선 쟁점이 될 수 있다며 흥분하고 있다. 청계천이 완공되기 전까지 이 시장의 지지율은 고건 전 총리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청계천 개통이 가까워 오면서 지지율이 점차 상승하기 시작해 마침내 청계천 복원 완공과 함께 박 대표를 앞지르고 고 전 총리와도 간격을 크게 좁혔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입소스코리아가 지난달 27, 28일 전국의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포인트)에 따르면 차기대선 후보 지지율은 고건 25.7%, 이명박 18.4%, 박근혜 16.8%, 정동영 6.4%, 이해찬 총리 2.5%,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2.0%,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1.2%, 손학규 경기도지사 1.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보다 앞서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달 27일 여론조사전문기관인 TNS에 의뢰, 전국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를 물은 결과에서도 이 시장의 지지율은 20.3%로 고건 전 총리(27.9%)를 맹추격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손 지사 “계획은 원대했으나........”
한편 이 시장의 인기 급상승과 더불어 눈여겨 볼 것은 손 지사의 행보다. 손 지사의 지지율은 대선 후보 가운데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한나라당 내부에서 손 지사는 박 대표, 이 시장과 함께 ‘빅3’로 불리며 차기대권주자로 주목을 받아왔다. 손 지사는 재야출신으로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을 했고, 청계천 판자촌에서 빈민운동을 하기도 했다. 또 서강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진보적인 성향의 학자였던 만큼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한나라당 내 보수적인 여타 의원들과 차별을 두어 햇볕정책을 지지해 왔다. DMZ 평화공원 조성사업도 그의 유연한 대북정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최근 폐막된 ‘세계평화축전’ 또한 그런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경기도 지사로 부임한 이후부터는 지속적인 외자유치와 경기도 경제 발전계획에 열을 올려왔다. 133억 달러에 이르는 외자유치 성공 등이 호재로 작용해 잠깐 손 지사의 행보가 여론의 주목을 받는 듯 보였지만, 이후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이 시장의 청계천 복원사업과 비교해 손 지사가 강조해왔던 것이 ‘경기방문의 해’, ‘경기도 10대 축제’ 등 문화사업과 관련한 정책이었다. 경기방문의 해를 통해 각종 축제 행사를 기획하고 외국인을 포함해 올해 6천900만 명의 외지 관광객을 유치해 10조원이 넘는 경제효과를 거두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약 5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준비했던 10대 축제 가운데 2/3이상이 종료된 지금 경기도가 거둬들인 실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지난 9월28일 국회 행정자치부 국정감사에서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은 “경기도가 국민혈세만 탕진했다” 며 “실속 없는 축제에 500억원의 예산을 낭비하기 전에 100만에 달하는 경기도의 빈곤층을 먼저 생각하라” 고 따끔한 충고를 던졌다. 이 의원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가 ‘세계’ 혹은 ‘국제’라는 이름을 붙여 개최한 축제 중 대다수가 외국인 관람객이 고작 몇 백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름값도 못한 축제로 조사됐다. 특히 이 의원은 지난 9월11일 막을 내린 ‘세계평화축전’을 지적하며 “총200억원의 예산이 들어간 대규모 축제였지만, 막상 행사 내내 ‘동네잔캄 라는 빈축을 샀다” 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경기도는 외국어 기반확충 지원 등의 교육여건 개선사업을 한다고 해놓고 7개 사업 139억원의 예산지원을 하지 않는 등 약속을 지키지 않아 비난을 사기도 했다. 지난 9월26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유기홍 열린우리당 의원은 “경기도가 올해 세수 부족을 이유로 경기도 교육청과 함께 하기로 했던 19개의 교육협력사업 중 7개 사업 예산 139억원을 깎아 사업 자체가 보류된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나 교육협력사업 예산을 삭감했던 경기도가 정작 영어마을에는 최근 2년 간 1천208억원을 집행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유 의원은 “하지만 지난 2004년 8월부터 올해 8월까지 안산 영어캠프 참가 학생수는 2만9648명으로 경기도내 전체 초·중·고교생 167만명 중 1.77%에 불과하다” 고 지적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탁월한 추진력과 청계천 특수로 인한 이 시장의 지지율 상승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며, 그리 오래가진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장의 상승세가 뚜렷해지면서 한나라 당 내의 역학구도에 변화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중도성향의 의원들 사이에 소리 없는 줄서기가 시작된 것이다. 때문에 박 대표와 손 지사 입장에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이 시장과 박 대표의 양립 구도만을 극명히 보여주며 박 대표 진영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손 지사가 그동안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보여준 행보는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그가 이 시장의 청계천 효과에 얼마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지 짐작케 한다. 어떤 계획의 연장선상인지는 모르지만 한나라 당 일각에선 손 지사를 비롯한 몇몇 중진 의원들이 박 대표 입지 확보에 상당부분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선까지 앞으로 800여일. 청계천을 타고 단단히 특수효과를 올리고 있는 이 시장과 연이은 동네잔치 수준의 행사와 더불어 지키지 못할 공약을 내세워 망신살이 뻗치고 있는 손 지사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