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교육비 역대 최대, 과잉 경쟁사회의 어두운 이면 밝힐 대책은

2025-03-18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박근종

매일일보  |  지난해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쓴 사(私)교육비가 1인당 월평균 43만 4,000원, 총 27조 1,144억 원으로 3년 연속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저출산으로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5.8% 늘어나는 등 우리 사회의 ‘학원 열풍’은 좀처럼 꺼지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해 정부가 사교육비를 잡겠다며 종합 대책을 내놓은 게 무색해졌다. 특히 고등학교 학생 사교육비가 대폭적인 증가로 수능 킬러문항 배제와 같은 단선적(單線的)인 조치로는 ‘사교육 공화국’의 오명을 지울 수 없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지난 3월 14일 발표한 전국 초·중·고 약 3000개교 학생 7만4000명을 대상으로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27조 1,144억 원으로 1년 전 25조 9,538억 원보다 4.5%인 1조 1,606억 원이 증가했다. 초·중·고 학생 수는 1년 사이 528만 명에서 521만 명으로 1.3%인 7만 명이나 감소했는데도 사교육비 총액은 오히려 늘어난 것이 문제다. 그나마 N수생 17만 명이 재수학원에서 쓴 학원비 3조 원이 빠져 있는 수치다. 이에 따라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지난해인 2023년 43만 4,000원으로 1년 전 2022년도 41만 원보다 5.8% 증가했다. 월평균 사교육비 상승률 5.8%는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3.6%를 웃돌았고,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 비하면 4년 만에 30% 증가했다. 1인당 월 평균 사교육비는 2021년 36만 7,000원(직전년도 대비증가율 21.5%), 2022년 41만원(11.8%)으로 증가폭은 둔화추세다. 전체 학생 중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 비율도 78.5%로 전년보다 0.2%포인트 오르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특히 사교육비 증가세는 역시 대학 입시를 앞둔 고교생이 주도했다. 초등학교는 39만 8,000원(6.8%↑), 중학교 44만 9,000원(2.6%↑), 고등학교는 49만1000원(6.9%↑)으로 모든 학교급에서 늘었다. 고등학교 사교육비 총액은 7조 5,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8.2% 증가했다. 전체 사교육비에 비해 두배 가까운 속도로 증가한 것이고 증가율은 2016년 8.7% 이후 7년 만에 최대치다. 지난해 6월 수능을 5개월 앞둔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킬러문항 배제 논란이 불거지면서 수능 출제 기조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 탓에 학원으로 달려간 고등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도 ‘초등 의대반’이 가동 중인데 정부의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이 가시화되면 사교육 시장은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사교육비 지출 격차는 여전히 컸다. 월 소득 800만 원 이상 가구는 한 달 평균 67만 1,000원을 사교육에 썼지만, 월 300만 원 미만 가구는 18만 3,000원을 지출해 3배 넘게 차이가 났다. 사교육 참여율은 월 소득 800만 원 이상 가구가 87.9%, 월 300만 원 미만 가구는 57.2%였다. 전문가들은 사교육 시장을 무작정 줄이려고 하기보다 사교육으로 발생하는 교육 격차를 메워주는 식으로 정책 전환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무엇보다도 높은 사교육비는 국가 존망과 직결되는 저출산의 주범으로 작용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조경엽 경제연구실장은 “저출산 현상(2015~2022년)의 약 26%가 사교육비 증가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라며 “학생 1인당 월평균 실질 사교육비가 1만 원 오르면 합계출산율이 0.012명 감소한다”라고 말했다. 주택 가격보다 사교육비가 저출산에 2~3배 더 영향을 미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지난해 6월 15일 사단법인 대전교육연구소가 주관한 ‘사교육비가 저출산에 미치는 영향 분석과 대안 모색’ 토론회에서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연구센터 박진백 부연구위원은 “사교육비의 합계출산율 기여율이 주택가격의 기여율 8.6-14.0% 보다 높은 22.5-32.5%로 추정된다”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교육비를 쓴다는 오명을 쓰고 있다. 서울 거주 20·30대의 80% 이상이 자녀를 경제적 부담으로 여기는 등 주택 가격보다 사교육비가 저출산에 2∼3배 더 영향을 미친다. “사교육비 폭탄 무서워 아이 낳겠나”라는 허탈(虛脫)과 회의(懷疑)가 나오는 이유다.  우리 사회가 온통 대학입시에 목숨을 거는 것은 학력과 학벌에 의한 차별대우, 임금 격차 등이 현실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교육 문제는 입시제도만으로 풀 수 없다는 것은 여러 경험으로 증명됐다. 노동시장 양극화(兩極化 │ Polarization)의 심화로 인해 양질의 일자리가 제한된 상황에서 교육과 입시가 ‘스펙 쌓기’의 수단으로 전락한 이유가 크다. 작금의 ‘의대 광풍’이 보여주듯 평생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직종을 얻기 위한 과열 경쟁이 결국 ‘사교육 공화국’을 만들어 냈음을 결단코 부정할 수 없다. 저출산 현상에 따라 학령인구가 감소세인데도 사교육비 총액은 오히려 증가세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공(公)교육에 대한 불신이 심화하고 사교육 업체의 마케팅이 고도화한 영향으로 보인다. 사교육비 급증의 원인은 잦은 대입 제도 개편, 공교육 부실, 사교육을 부추기는 이권 카르텔 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과도한 사교육비를 줄이는 근본 대책은 공교육을 강화하는 것만이 첩경이다. 우수 교사들을 적극 양성하고 교사들이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공교육 정책의 내실을 다져 실행으로 옮겨야만 한다. 특히 수업 내용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등 학교 교육의 품질과 신뢰를 높이고 공교육의 위상을 바로 세울 것은 물론 사교육을 조장하는 카르텔을 추적해 발본색원(拔本塞源)해 뿌리를 뽑아야만 한다. 그동안 입시 제도를 수없이 많이 바꿨음에도 상황이 별로 나아지지 않는 것은 근본 원인이 학교 바깥에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직업·직종별 임금 격차, 정규직·비정규직 간 노동 이중 구조, 일자리 엇박자(Missmatch), 승자독식(勝者獨食 │ Winner-take-all), 수도권 인구집중 등이 과잉경쟁을 유발하며 사교육 시장의 좋은 자양분이 되고 있음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결국 사교육 문제는 ‘빈부격차-승자독식-저출산’의 고리로 얽히고 설킨 악순환의 반복인 만큼, 갈수록 심화하는 양극화의 폐단부터 걷어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어떤 교육개혁도 소용없게 무용지물로 만드는 뿌리 깊은 학벌주의와 학력주의의 폐해를 극복할 실효성 있는 해법이 먼저 나와야만 한다. ‘승자독식’의 대학 서열이 무의미해지는 혁명적 상황 반전이 없다면 사교육은 결단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공급 통제로 인해 특정 직종에만 지나치게 높은 수익이 보장되는 ‘직종의 울타리’를 낮추고, 과잉 경쟁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밝힐 대책을 서둘러 강구해야 한다. 양극화 완화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중소기업 지원과 비정규직의 혜택을 늘리고 일자리의 매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정책들을 발굴해야 한다. 교육부만이 아니라 범정부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접근해야만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