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외인 수급불균형에 증시 '게걸음'…밸류업 기대보다 차익실현 부담
코스피 성적표 주요국 ‘꼴찌’...외국인만 '바이코리아' "오를 대로 올라"…"기업밸류업 재료 곧 소멸될 것”
2025-04-02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금융당국이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의 세부 방안을 공개한 뒤 개미들과 외국인간 수급 불균형이 지속되며 코스피의 상승동력을 억누르고 있다.
2일 코스피 지수도 이같은 상황이 그대로 연출됐다. 이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지수는 전일 대비 5.30p(0.19%) 오른 2753.16에 거래를 마쳤다. 지수는 전일 대비 3.71p(0.14%) 내린 2744.15로 출발해 보합권내 등락했다. 개인과 기관이 각각 6312억원, 3452억원을 순매도했지만, 외국인이 1조73억원이나 순매수하면서 지수 하단을 지지했다. 최근 한 달여간 흐름도 이와 비슷했다. ‘개미’(개인투자자)들이 물량을 대거 쏟아낸 반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바이 코리아’를 이어나가고 있다. 실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코스피 대장주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올들어 코스피 상승률은 중국·인도를 제외하고 주요국 중 하위권으로 나왔다. 외국인이 ‘바이 코리아’를 이어가며 사상 최대규모의 순매수에 나섰지만, 차익실현 물량을 쏟아낸 개인의 순매도 규모 또한 사상 최고수준에 올라서면서 지수가 '게걸음'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금융위원회가 민생경제 토론회에서 밸류업 프로그램을 공식화한 지난 1월 17일부터 구체적인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이 발표되기 직전 거래일인 2월 23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개인투자자는 9조 9178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하지만 구체안이 나온 2월 26일부터 ‘슈퍼 주총’ 시즌이 끝난 3월 29일까지 개미들은 6조 1856억원어치 순매도로 돌아섰다.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 외국인은 총 15조7676억원을 순매수하며 15년만에 순매수 최고 기록을 세웠다. 종전 기록은 양적완화 정책이 본격 시행한 지난 2009년 3분기로, 당시 외국인은 15조 2726억원을 순매수했다. 개미들이 ‘밸류업 실망 매물’을 쏟아내기 시작한 2월 26일 이후에도 총 5조 2409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은 밸류업에 대한 기대 외에도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중심의 수출 회복 등에 베팅하며 순매수세를 이어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대로 매도행진을 벌인 개미들은 1분기에 11조6049억원을 순매도했다. 직전 분기에 세웠던 분기별 최대 순매도(11조 4765억원) 기록을 다시 갱신했다. 1월에 3조원 가까이 순매수했던 개미들은 2월과 3월엔 각각 8조원과 6조원을 팔아치웠다. 주요국 증시 랠리에서 소외됐던 코스피가 반도체 등 기술주의 강세 등에 힘입어 일부 상승하자 대거 차익 실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그결과 주요국 중 코스피 상승률은 꼴찌를 기록중이다. 올 1분기에 닛케이225가 20%, 대만 가권과 유로스탁스 50이 12.4% 오를 동안 코스피는 3.4% 오른 것으로 나왔다. 올해 사상 최고치를 계속 갱신해 미 증시 상승에 이목이 쏠렸던 S&P500도 10.8% 상승했다. 나스닥은 9.11% 상승했다. 중화권은 상해종합 1.2%, 항셍 -2.97% 로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 중국 증시와 상관관계가 높은 코스피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코스피는 지난해 11월부터 반도체 업황 개선 기대감이 높아지며 두달만에 16.6%가 오르는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1월초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잠정실적이 나오면서 상승분을 반납했다. 2월 들어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로 외국인들의 자금은 큰 폭으로 들어 왔지만, 개인들은 한국 증시에 대한 불신으로 대거 매도에 나섰다. 2월말 발표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도 개인투자자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만족시키진 못해서 개인들의 한국 증시 매도세는 계속됐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코스피도 1월 저점에 비해서는 13% 상승하기는 했지만 조정없이 계속 상승장이 이어진 미국·일본에 비해서 연초 수급문제 때문에 하락폭이 커 분기로 보면 저조한 상승률을 보였다”거 밀헸다. 박 연구원은 “다만 5월에 밸류업 프로그램의 추가내용이 발표되고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도 조기 발표되기 때문에 모멘텀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프로그램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책이 부족하다는 실망감 속에 은행, 증권, 자동차 등 저PBR 종목의 상승 추진력이 사그러든 상태”라고 말했다. 올해 1분기 미 S&P500(10.1%), 나스닥(9.1%), 일본 니케이225(20.6%), 대만 자취안(13.1%) 등이 랠리를 이어 가는 동안 코스피는 3.4% 상승하는 데 그친 것도 개인들의 실망감을 키웠다. 1월 저점 대비로는 12.7% 상승했지만, 밸류업에 대한 기대감을 선반영한 증시 상승세가 더이상 탄력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구심도 크다. 증권가에서 코스피가 3000선을 돌파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쏟아내고 있지만 개인들은 코스피 하락에 베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사들이는 등 비관적인 전망을 거두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 문화를 바꾸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방안이 추진돼야 진짜 밸류업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단순히 배당을 늘려 PBR의 분모(자본)를 줄이는 게 아니라 분자(주가)를 키워 기업 가치를 제고하도록 기업의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밸류업”이라면서 “밸류업은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