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조용하고 시끄러운 퇴사가 의미하는 것

2025-04-03     이명지 인크루트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팀장 

매일일보  |  직장에서 퇴사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업무만 처리한다. 승진도, 보상도 바라지 않으며 회사에 이바지할 의지도 없다. 펜데믹 기간, 밀레니얼 세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급부상한 직장 문화 ‘조용한 퇴사’에 대한 설명이다. 

한국 직장인들은 ‘조용한 퇴사’에 어떻게 생각 할까. 이에 대해 묻기 위해 3월 26일 HR테크 기업 인크루트가 직장인 1097명을 대상으로 ‘조용한 퇴사에 대한 인식’에 대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첫 질문은 단연 ‘당신은 지금, 조용한 퇴사 중입니까?’. 전체 응답자의 무려 51.7%가 ‘그렇다’라 답했다. 절반이 넘는 비율이다. 이 중 12.7%는 ‘매우 그렇다’, 39.0%는 ‘대체로 그렇다’였다. 내 주변 동료 중 절반 가까이 조용한 퇴사를 실행 중인 것이다.  연차별로 교차 분석한 결과 ‘8년차~10년차’가 57.4%의 비율로 가장 높았다. 이어 ‘5년차~7년차’도 56.0%로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한창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도맡아야 할 연차인데 ‘조용한 퇴사’의 비율이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회사의 고위 직급인 17~19년차도 54.7%라는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이들은 왜 ‘조용한 퇴사’라는 절차를 밟아 나가게 됐을까.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현재 회사의 연봉, 복지 등에 불만족해서(32.6%)’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아마 회사에 입사한 처음부터 조용한 퇴사자의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은 회사원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막상 다니다 보니 내가 일 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답답함과 서운함이 그들을 조용한 퇴사자로 만들었을 것이다.  최근 지구촌 반대편에서는 ‘조용한 퇴사’와 전혀 반대되는 개념이 대두했다. SNS를 중심으로 ‘시끄러운 퇴사’가 번져 나가고 있다. 미국 Z세대 직장인들이 자신의 해고 과정이나 퇴사를 상사에게 이야기하는 과정을 숏폼으로 중계하는 것이 화제가 됐는데 이를 ‘시끄러운 퇴사’라 부른다.  이들은 해고 과정을 라이브 방송으로 전송하면서 회사의 부당함을 널리 알리기도 하고, 퇴사 의사를 상사에게 전화 통화로 밝힌 뒤 열화와 같은 응원 댓글을 받기도 했다.  퇴사 과정을 타인과 공유 한다니, 예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이라서 그렇다고? 이미 한국에서도 최근 유튜브에 퇴사 과정을 주제로 삼은 ‘퇴사 브이로그’가 성행하고 있다. 전 세계를 막론하고 퇴사가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잡은 것이다.  퇴사에 대한 직장인들의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조용한 퇴사와 시끄러운 퇴사 모두 직장인들에겐 다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인크루트 조사에서 ‘만일 당신의 동료가 조용한 퇴사 중이라면 어떨까’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10명 중 약 7명(65.8%)이 ‘긍정적’이라 답했다. 동료의 조용한 퇴사로 내가 피해를 볼 수 있지만, 일단은 ‘이해한다’라는 인식이 전제된 답변으로 분석된다.  아직은 미국보다 보수적인 직장 문화를 지닌 한국이지만, ‘시끄러운 퇴사’에 대해서도 44.3%의 직장인이 ‘기업 이름 미공개면 괜찮다’고 답했다. ‘상관없다’고 응답한 비율도 31.4%에 달했다.  퇴사에 대한 직장인들의 인식이 변화하면서 기업도 퇴사를 다루는 다양한 정책이 필요해졌다. 우선 조직 내 조용한 퇴사자의 비율을 최대한 적게 유지해야 한다. 앞서 분석한 것처럼 사회 생활에서 벽에 부딪힌 이들이 택하는 조용한 퇴사는 장기적으로는 조직 성장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이에 따라 직원이 처음에 가졌던 각오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 생기는 다양한 어려움을 살필 필요가 있다. Z세대를 중심으로 퍼져가는 ‘시끄러운 퇴사’ 역시 퇴사에 대처하는 직장인들의 태도가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조용히 나가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는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 부당한 해고는 물론, 그들 기준에서 옳지 못한 처우를 널리 알리고 나가는 것. 기업 입장에서는 이제 퇴사자를 잘 내보는 것 역시 채용만큼 중요한 일이 돼 버렸다. 퇴사를 향한 상반된 두 가지 현상은 이처럼 변화하는 직장인들의 인식을 보여준다. 조직의 불합리함을 더 이상 참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조용하고 시끄러운’ 퇴사는 이러한 해결책들 중 한 가지다. 기업은 이미 시작된 직장 문화의 변화에 어서 발을 맞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