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상한 나라의 '용산'

2024-04-03     조현정 기자
조현정
지금 용산 대통령실이 이상하다. 지난 2년 가까이 단 한발자국도 양보하지 않던 정책들을 총선을 코앞에 두고 일제히 뒤집고 있다. 모든 것들이 갑작스럽다. 올해 연구·개발(R&D) 예산을 갑자기 감축하더니 윤석열 대통령은 연일 "임기 중 예산 대폭 확대"를 언급하고, 이번에는 "R&D 개혁을 진행하는 동시에 내년 예산 대폭 증액"이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임기 중'이라고 했으니, 아직 남아 있는 3년 동안 하겠다는 말을 믿어야겠지만 뭔가 이상하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 추진도 마찬가지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갑자기 '2000명'이라는 숫자를 들이밀며 몰아 붙이고 있다. 이후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 상황에 불리하게 돌아가자 급하게 대국민 담화를 연다고 발표하며 '유연해진'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하게 했다. 하지만 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2000명은 최소 수준"으로 "정부가 꼼꼼하게 산출했다"고 강조하며 '불법적 집단 행동', '위협'과 '굴복', '카르텔'이라는 단어들을 꺼내 들며 다시 한번 압박에 나섰다. 그러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대통령 담화 후 언론에 나와 "2000명 숫자가 절대적 수치라는 입장은 아니다"며 "정부는 2000명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의대 증원 규모를 포함해 더 좋은 의견과 합리적 근거가 제시된다면, 정부 정책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대통령의 말을 뒤집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는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전향적인 입장에서 검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조금 전만 해도 대통령은 2000명을 최소 수준으로 못 박았는데 정책실장은 그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2000명 증원 철회를 요구하는 의료계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작 대통령실이 숫자에 매몰돼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를 위한 건강보험 재정, 의료수가 문제, 각 과별 불균형 문제 등 선제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정책적 과제에 대한 제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 아무리 총선을 앞두고 발버둥을 친다고 한들 이미 내뱉은 말들을 주워 담거나 바꿀 수는 없다. 게다가 정책 추진을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갑자기 뒤집는 것은 최악 중 최악이다. 일관되지 못한 정책은 국가 경쟁력을 저하 시키고,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옳다고 믿었던 부분은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뚝심 있게 밀어 붙여왔다. 지난해 한일 관계 개선과 건설 노조 불법 행위 근절도 '친일'과 '노조 탄압'이라는 비난에도 꿋꿋히 진행해왔던 정책들이다. 이 때문에 낮은 지지율이지만 그나마 30%대를 유지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거가 다가오자 윤 대통령이 흔들리고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다.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놓고 대통령과 참모의 말이 서로 다르고 태도가 바뀌면서 국민 신뢰는 더욱 잃을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더 이상한 나라의 '용산'이 되기 전에 정책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고, 그 것으로 오롯이 국민의 심판을 기다리는 게 그나마 혼란을 줄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