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도, 도덕성 논란도 묻혔다···총선판 뒤덮은 그것 '대파'
尹 대파 발언, 野가 문제 삼고 與가 키웠다 대파논란이 지배한 총선···"유권자 선택 방해"
2025-04-09 이태훈 기자
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4·10 총선 막판 국면을 지배한 단 하나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 '대파'다. 선거운동 기간 후보들의 막말 및 도덕성 문제가 쏟아졌지만, 거듭되는 대파 논란에 묻혀 오래 가지 못했다. 야권은 선거운동 마지막 날까지 관련 공세로 승기 굳히기에 나섰다. 다만 '대파 일변도' 선거판으로 유권자의 후보 검증 능력을 무력화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야당은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9일에도 대파 공세에 주력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은 이날 국회에서 가진 전국대파생산자협의회 농민들과의 합동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합리적 대파 가격 875원' 발언 이후 대파밭을 갈아엎을 지경에 이르렀다"며 "국민혈세가 투입되는 공영도매시장의 독점적 수탁권을 비호하는 전근대적 유통구조를 방치한 윤석열 정권의 무능함이 사과 한 알 1만원으로 집약되어 폭발했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비판은 지난달 18일 윤 대통령의 '대파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발언에서 비롯됐다. 발언이 알려진 후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유세 현장에 '대파 헬멧'을,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대파 팻말'을 들고 나오며 정부 심판론을 부각했다. 대통령 발언이 3주 전에 나온 것을 감안할 때, 2주 간의 공식 선거운동 기간을 '대파'를 둘러싼 온갖 반응들이 점령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국 AP통신이 지난 5일 한국 총선 이슈를 다루는 기사에서 3대 키워드를 꼽으면서 가장 첫머리에 올린 단어도 '대파'였다. 대파로 총선판이 도배되는 사이 여야 후보들의 막말과 도덕성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김준혁 민주당 경기 수원정 후보(김활란 총장 이대생 성상납 발언 등), 양문석 민주당 경기 안산갑 후보(편법 대출 의혹), 공영운 민주당 경기 화성을 후보(아빠 찬스 논란), 윤영석 국민의힘 경남 양산갑 후보(문재인 전 대통령 대상 막말)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논란은 대파 파동에 묻혀 판세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금세 사그라들었다. 대파 파동의 수명을 연장시킨 주체는 여당과 선거관리위원회라는 평가도 나온다. 먼저 대통령의 대파 발언이 나온 지 열흘 가까이 된 지난달 26일, 이수정 국민의힘 경기 수원정 후보는 "윤 대통령이 말한 가격은 대파 한 단이 아닌 한 뿌리'라고 옹호했다가 논란을 키웠다. 이후 선관위가 투표소 반입 금지 품목으로 대파를 올리면서 선거 막판까지 유세 현장에서 대파가 거론됐다는 게 정가 분석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야당의 '대파 탄압' 주장에 "일제 샴푸, 위조된 표창장, 법인카드 등을 들고 투표장에 가도 되겠느냐"고 맞불을 놓은 것도 역효과를 냈다는 해석이다. 한편 선거 국면이 '대파'로만 채워지면서 유권자가 큰 피해를 봤다는 지적도 나온다. 선거 승리에만 몰두한 정치권이 거대 담론을 다루는 대신 상대를 공격하는 이슈만 생산했고, 이것이 유권자의 '최선의 선택'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권자가 단일 이슈에 매몰돼 후보 개개인을 검증할 충분한 기회를 보장받지 못했다는 시각도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매일일보>에 "대파 이슈가 선거판을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어떤 이슈가 나와도 대파가 덮어버리니 유권자 입장에선 (후보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접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