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휴브리스를 경계하라

2025-04-14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황용식
한 기업이 몰락하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하나의 키워드로 압축된다. 바로 ‘휴브리스(Hubris)’라는 단어인데, 휴브리스는 그리스어로 ‘자만 혹은 자부심이 큰 인간이, 신(神)을 화나게 해 신의 영역에 도전해 몰락을 자초하는 경우’를 뜻한다. 한가지 재미있는 지점은 휴브리스는 실패하고 있는 기업에게서 나오는 특성이 아닌 성공의 가도를 달리는 기업에게서 유독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마치 창공을 향해 비상(飛上)하는 이카루스가 태양 가까이 날자 밀랍이 녹아 날개가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어느 구간까지는 성공적으로 보이는 일들이 한 순간에 좌절될 때, 그 배경에는 휴브리스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성공한 기업에게는 성공한 경영자가 있다. 그러나 이 성공한 경영자가 지속가능한 성공으로 이끌려면 바로 ‘휴브리스’라는 치명적인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공한 CEO에게는 늘 ‘자신감’이 뒤따른다. 하지만 그 ‘자신감’이 ‘휴브리스’로 변질 되었을 때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1986년 UCLA 대학의 리차드 롤 교수는 기업 간 인수합병이 실패한 주요 원인을, 최고경영자의 휴브리스로 꼽았다. 구체적으로 코넬대학의 매튜 헤이워드와 도널드 햄브릭 경영학과 교수는 1989년부터 1992년까지 1억 달러 이상의 돈이 오고 간 M&A 106건을 분석한 결과, 기업의 최근 성과가 좋을수록, 최고경영자에 대한 언론의 찬사가 쏟아지게 되고, 그 최고경영자는 거액의 돈을 주고 기업을 인수하게 된다고 하였다. 궁극적으로 시장가격보다 높게 책정된 가격으로 인수한 기업은 재무적 위기를 맞게 되고 기업의 실패로 이어지게 된다고 한다. 실패한 기업의 CEO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휴브리스’를 피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이 따른다. 첫째, ‘나르시즘’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호숫가에 비친 자신의 멋진 모습에 반해서 물에 빠져 죽은 그리스 신화의 나르시스처럼 성공신화에 도취하게 되면 기업경영에 있어서 현실감각을 잃게 된다. 구체적으로 휴브리스의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성공적인 사업전략경쟁력 강화, 수익성 향상 경영자 자신이 최고라고 믿기 시작 외부적으로 자만 표출 혁신성 억제 현실 안주 상태로의 진입 기업의 몰락. 영국의 로얄 홀러웨이 대학의 데니스 투리시 교수는 “리더들은 자신이 모든 해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둘째, ‘경청’해야 한다. 경청하지 않는 CEO는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듣기 싫어하며 자신이 먼저 말하는 것을 즐긴다. 경영자들 중에서 토크콘서트나 경영콘서트를 좋아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런 자리는 휴브리스로 무장된 CEO들에게는 최적의 놀이터다.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훈화 말씀은 부하직원들로 하여금 입을 닫게 만들고 좋은 아이디어의 싹을 조기에 자르게 만든다. 1895년 미국 시카고에서 설립된 슈윈(Schwinn)이란 자전거 제조업체는 1970년대 산악자전거 시장 진출에 대한 직원들의 제안을 무시하고 기존 자전거 시장에 매진하였다. 창업자의 후손인 에드워드 슈윈 CEO는 “우리는 자전거를 매우 잘 안다. 산악자전거 제조업체들은 모두 아마추어”라며 새로운 사업모델에 대한 의견을 배제했다. 이후에 산악자전거는 자전거 제조 업계의 대세 업종이 되었고 1990년대 초반, 100년 기업 슈윈은 결국 파산하게 되었다.

셋째, ‘겸양(謙讓)’의 미덕을 갖춰야 한다. 겸양은 휴브리스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성공한 CEO들에게 겸양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한가지 오해하기 쉬운 점은, 겸양을 겸비한다는 것은 자신이 절대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내실이 있는 인격일수록 겸손할 수 있다는 심리학적 분석이 있다. 잊을만하면 나오는 경영자들의 갑질 논란은 아마 겸양의 미덕을 갖춘 경영자에게는 먼 이야기일 것이다. ‘오만은 패망의 선봉이고 자만은 넘어짐의 앞잡이’란 말이 있듯이 경영자의 휴브리스는 언젠가 거대한 액수의 청구서로 돌아오게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기업이 실패하는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원인을 뽑으라면 경영자의 휴브리스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휴브리스 인덱스(Hubris index)’와 같은 새로운 CEO 평가시스템이 대한민국 경영자들에게 당장 도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