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탄소배출 안 줄이면 해외수주도 힘들어”
미국·유럽 탄소 배출 규제 강도 높여… 정부도 관련 규제 강화 “세계 경제에 환경 규제가 미치는 영향 커져… 맞춤 전략 필요”
2025-04-14 나광국 기자
매일일보 = 나광국 기자 | EU(유럽연합)과 북미 국가들을 중심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가운데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탄소중립을 중심으로 국가와 지역별 ESG 대응전략에 나서고 있다.
1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장기침체에 빠져 있는 국내 주택분양업에 이어 업계 최후보루인 해외건설수주 환경마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해외건설협회 기준 국내 건설사들은 올해 1분기 55억2000만 달러의 누적 해외수주액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9.6% 줄어든 규모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수주액이 줄어든 것은 전통적 국내 건설사들의 수주 텃밭인 중동 외 다른 국가들의 수주가 부진하기 때문이다. 1분기 중동 지역 수주액은 전년보다 90% 이상 늘었다. 그러나 중동 외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과 북미·태평양 지역 수주액은 모두 작년보다 50% 이상 줄었다. 유럽 수주액이 늘기는 했으나, 다른 지역 대비 수주비중이 거의 없다. 국내 대형 건설업체 관계자는 “해외수주를 지원하는 정부의 '팀코리아' 활동은 거의 중동에 집중돼 있는 상황”이라며 “중동 지역이 수주 텃밭이라고 하나 특성상 발주시기나 계약시점이 미뤄지는 변수가 많아 안정적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최근 건설사들이 중동 이외의 지역으로 수주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의 경우 발주처에서 사측에 ESG 시스템 설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국내에서도 향후 관련된 규제가 강화될 예정이라 건설사들은 국제 경쟁력은 물론 국내에서도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미리 탄소중립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유럽연합(EU)은 ‘탄소중립산업법’으로 탄소배출 규제 강도를 높이면서 한국 같은 수주국가들을 옥죄고 있다. 김영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EU에서 논의된 환경 관련 규제만 43개에 이른다. 이와 같은 규제들이 본격 발효를 앞두고 있어 세계 경제에 미치는 환경규제 영향력이 크게 확대됐다”며 “그동안 상대적으로 건설 산업 혁신 논의에서 많은 관심이 없었던 건설기업의 투명성 제고 및 정보 공개 확대 등 이슈들도 앞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친환경이라는 국제적 추세를 맞추기 위해 한국에서도 오는 2026년 이후부터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사는 환경·사회·사회적 책임 활동을 포함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건설사들이 주목하는 변화는 정부가 내년부터 30세대 이상 민간아파트에도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을 의무화한 것이다. 제로에너지 건축물은 신재생에너지 등을 활용해서 에너지 소요량을 충당하는 친환경 건축물을 의미한다. 당초 올해부터 민간아파트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될 예정이었으나, 건설경기 침체로 인해 정부는 적용 시기를 내년으로 미뤘다. 현장에서도 친환경 기술이 적용된 자재들이 개발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대대적 친환경 전환은 투자금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업 특성상 친환경 관련 R&D나 투자가 활발하지 않고, 더욱이 시황 침체도 겪는 만큼 구체적 투자금액은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탄소저감이라는 해외시장 발주 트렌드에 맞춰 친환경 설계 등을 추진하고 있는데 중소업체들의 경우 불황에 투자부담이 따르는 만큼 민관협력투자개발사업(PPP) 대응력과 정부의 정책금융 지원 등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