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끝없는 요구’… 등돌리는 국민들
전공의, 대화 조건으로 의료행위 면책·군복무 특혜·파업권한·차관 경질 제시 경실련 "의료계의 복지부 차관 고소는 특권의식에서 비롯"
2025-04-17 이용 기자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의료계가 정부와의 대화 조건으로 ‘의대증원 백지화’와 더불어 군복무 혜택, 파업 권한을 내걸면서 환자·시민 단체 및 업계 종사자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총선(10일)을 기점으로 의정 간 대화가 사실상 무산된 이후 각 의료단체는 다시 각자 의견을 주장하는 체제로 돌아갔다. 본래 양측이 의대증원을 1년 유예하는 것으로 대화 물꼬를 틀 것으로 예상됐으나, 정부여당의 총선 참패로 의료계 단체는 다시 ‘의대증원 원점 논의’로 입장을 선회했다. 이번 의대증원 정책에 가장 반발하는 집단인 전공의들은 이와 더불어 추가 조건까지 제시했다.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 씨는 병원을 떠난 전공의 20명에 사직 이유와 수련 환경에 대한 의견, 복귀 조건 등을 물은 인터뷰 결과를 최근 공개했다. 사직 전공의들은 복귀 조건으로 선의의 의료행위에 대한 면책, 군복무 기간 현실화, 의료인 노조 결성 등을 내세웠다. 전공의들은 "업무개시명령으로 대표되는 (의료법상의) 전공의 강제노동조항을 없애지 않는다면 아무도 수련에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 전공의의 파업 권한이 보장된다면 다시 돌아갈 의사가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계 포럼에서도 유사한 주장이 나왔다. 17일 세계의사회(WMA) 산하 젊은 의사 네트워크(JDN) 주최 행사에 참석한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과 이혜주 전 정책이사는 국내 의료인에겐 파업권이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한국에서는 의사의 파업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한국 의사들에게는 그런 기본적인 권리가 없다"고 했다. 전날(16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 회관에서 진행된 '2024 대한의사협회 글로벌 포럼'에 안덕선 전 세계의학교육협회(WFME) 부회장은 "복지부에서 의료인력정책을 담당하는 13명의 공무원이 의사 등 보건의료인력 132만명의 전문가를 담당하고 있다"며 "한국의 의료 규제 모델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선진국은 의사단체가 자율규제 권한을 가지고 있는 반면, 국내선 소수의 공무원이 다수의 전문 의료인력을 규제하고 있단 내용이다. 이어 국내선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과 의대생의 휴학 등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불법이며, 정부의 업무복귀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의사 면허를 정지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의사들의 전문성이 법적 판단과 정부의 징벌적 조치에 의해 결정돼 의료 서비스의 질적 향상의 발목을 잡는단 설명이다. 특히 의료계는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에 대한 경질을 한목소리로 촉구하는 상태다. 실제 사직 전공의 1360명은 박 차관을 직권 남용 및 권리 행사 방해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앞서 대한의사협회도 정부와의 대화 조건으로 복지부 장·차관에 대한 파면을 요구한 바 있다. 이들은 박 차관의 일부 발언과 전공의에 대한 행정조치가 의정 간 대립을 더욱 가중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는 의사들의 태도가 독선적이라며 비판에 나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사직 전공의들은 정부의 증원 정책으로 피해를 봤다며 복지부 차관을 직권 남용 등으로 고소한다고 한다”며 “특권의식에 취해있는 의료계 행태를 국민이 얼마나 더 참고 기다려야 하나”고 지적했다. 환자 단체와 보건의료노조는 환자, 업계 종사자, 정치권 등 ‘국민의 뜻’이 반영된 자리인 사회적 대화체 구성에 참여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지난 1일 대통령실은 국민과 의료계, 전문가, 환자, 소비자단체, 정부 등 다양한 구성원이 참여하는 협의체인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도 전날(16일) “정부, 여당, 야당, 의사단체, 보건의료기관 노사, 환자단체, 시민사회단체, 전문가가 참가하는 사회적 대화체를 구성해 조속한 진료 정상화와 올바른 의료개혁 추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부연했다. 다만 의료계는 대화체 구성에는 관심이 없는 상태며, 정부가 조건을 수용하기 전까진 대화에 응하지 않겠단 입장을 고수하는 중이다. 서울 S병원 간호사는 "의료공백으로 인한 업무 부담이 매우 크지만, 국민들의 협조와 현장에 남은 의료진 덕분에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사직한 의사들은 어차피 없는 셈 치고 있다. 정부의 행정명령이 곧바로 집행되는 편이 오히려 의사 복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정부는 이날도 의정 간 대화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날 진행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에선 현재 빚어진 의료공백에 대해 비상진료체계를 강화하겠단 입장만 내놨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앞으로도 정부는 국민 생명과 건강 보호를 위해 중증·응급 중심으로 비상진료체계를 철저하게 운영하고 현장의 의사·간호사 등 의료진이 지치지 않도록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