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중국 위협까지”…12년 이어진 ‘대기업 역차별’ 유통법
유통법 개정안 사실상 폐기 수순…원점서 재검토 “중국 이커머스 공세 속 대형마트만 규제 불합리”
매일일보 = 강소슬 기자 |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이 대기업 역차별과 중국 자본의 침투를 가속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국회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제22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이 압승을 거둔 가운데, 그간 정부가 추진 의지를 보였던 유통법 개정안은 21대 국회 상임위를 계류된 상태로 자동폐기 가능성이 높다. 이에 개정안 발의부터 다음 국회에서 새로 시작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유통법 개정안은 대형마트의 주말 의무휴업 규제를 완화하고 온라인 새벽 배송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정부는 22대 국회가 열리면 대형마트 규제 완화 내용을 담은 유통법 개정안을 다시 발의한다는 계획이지만, 21대 국회에서도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원점으로 돌아간 법안을 ‘여소야대’ 정국에서 통과시키는 데는 많은 난항이 예상된다.
유통법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2012년 제정됐으며, 2013년 시행됐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오전 12시(자정)~오전 10시’까지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제한하도록 하고, 온라인 사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매달 주말 2회 강제 휴무를 지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간 법 취지와 다르게 전통시장의 매출은 늘지 않았고, 소비자의 불편만 늘어난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아 실효성 문제에 부딪혔다. 많은 지자체가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공휴일로 지정해 왔으나, 지난 1월 민생토론회에서 정부가 생활 규제 개선안으로 대형마트 영업규제 개선 방안을 발표한 후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에 대구시를 비롯해 전국 기초지자체 76곳에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러나 유통법으로 인해 대형마트가 온라인으로 주문받은 상품을 새벽배송 등 비영업시간에 배송하는 것은 여전히 금지돼 있다.
문제는 유통시장이 10여년간 달라졌다는 점이다. 규제가 시작된 2013년 당시엔 전통시장의 최대 경쟁자가 대형마트였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유통환경은 빠르게 바뀌었다. 온라인 유통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현재는 오프라인 유통시장을 뛰어넘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3년 연간 유통업체 매출 동향’을 보면 지난해 온라인 유통시장 규모는 전체 유통 매출 비중의 50.5%를 차지하며, 처음으로 오프라인을 앞질렀다.
이런 상황에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의 공세까지 더해지면서 식탁까지 중국 자본에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이 거대 자본을 투입해 한국 시장이 잠식되고 나면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기준 알리와 테무의 국내 이용자 수는 국내 2·3위를 기록했다. 특히 테무의 국내 이용자 수는 전월 대비 42.8% 급증, 11번가를 제쳤다. 알리 국내 이용자 수는 전달보다 8.4% 늘었다. 더욱이 중국 이커머스 업체 역시 국내 오프라인 유통업체와 달리 새벽배송에 제한이 없다.
업계 관계자는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개정안 통과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아 다음 국회에서 유통법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며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까지 국내에 진출한 상황에서 대형마트 온라인 사업을 규제한다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 현재 국내 대형마트는 매출 부진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상황이라 실효성 부족한 규제를 풀어 공정한 경쟁의 판을 깔아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