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민주당의 '심판' 이후 무엇이 남는가
2024-04-22 이설아 기자
매일일보 = 이설아 기자 | 민주당이 2연속 총선에서 180석 가까이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 총선에선 박근혜, 이번 총선에선 윤석열. 다들 '심판론'이 주요하게 작용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든다. 시민들이 민정당의 후신이 아닌 민주당을 선택한 이유는, 으레 민주당이 상징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안전망 확보와 복지, 성평등 등을 기대했기 때문도 있다. 그런데 지금의 민주당에 '심판'이 아닌 이러한 '가치'를 말할 사람이 남아 있는가. 당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비례대표 후보에 민주당은 당초 장애인 후보를 공천하지 않았다. 총선 기간 중에는 당의 핵심 관계자가 장애인 후보에게 장애인 몫이 아닌 TK 후보로 나가라고 권유했다가, 이를 후보가 공개적으로 밝히며 사퇴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결국 시민사회 추천을 통해 서미화 후보가 무사히 22대 국회로 입성했지만, 민주당의 공천 기준에 대해 의아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여성 권익을 말할 후보도 없었다. 21대·22대에서 비례대표로 영입됐던 정춘숙·권인숙 의원은 지역구 경선에서 패배해 공천을 받지 못했다. 30% 여성 공천 할당도 물론 지키지 않았다. 민주당의 이번 총선 10대 공약에서 여성 공약은 출산과 육아 공약으로 도배됐다. 2030 여성의 약 60%가 민주당에 투표했지만, 민주당은 항상 '이대남'만을 위해 구애한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의 공천 배제는 최악이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발의했던 민주당은 임 소장이 '병역기피자'라며 그에게 당선권 밖인 비례대표 20번조차 주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 소장의 병역거부에 대해 특별사면을 시행했는데, 노 전 대통령의 뜻을 잇겠다는 2024년의 민주당의 모습은 이보다 후퇴했다. 지역 갈등을 넘겠다는 구호도 퇴색됐다. 전당대회 당시 원외 지역위원장들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던 이재명 대표는 2년이 지나자 영남 정치권의 요구에 대해 "열세 지역 당선은 후보 역량에 달린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균형을 목적으로 도입된 대의원제 폐지를 위한 '빌드업'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금 '당장' 필요한 인권적 문제에 대해서 민주당은 항상 '나중에'를 이야기한다. 이러다 100년이 지나도 나중을 이야기할 것 같다. 그 사이 당선자 모두가 30대 정치인이라고 자부하는 개혁신당은 첫 일성으로 'AV 페스티벌 개최 필요성'을 운운한다. 이에 대한 동조의 뜻만 남은 야권이, 과연 정부·여당을 심판하고 나면 그들과 다른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