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후위기와 인권

2024-04-22     김철홍 자유기고가
김철홍

매일일보  |  열흘 전 한국장애인연맹 대전DPI의 인권정책아카데미의 일환으로 ‘기후위기와 장애인 인권’이라는 주제의 강연에 초청받아 인권사회학자인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의 색다른 강연을 듣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평소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이 많아 기고문도 써왔지만, 기후환경과 인권 사이의 칸막이를 없애고 두 분야를 동전의 양면으로 보는 세계적 동향과 기후위기가 국내외적으로 어떤 피해를 입히는 지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인식전환의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 다시 한번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 2003년생으로 환경운동의 새 역사를 쓴 스웨덴 소녀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16세이던 2019년 UN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과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설 중 "어떻게 감히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하나도 바꾸지 않고 몇몇 기술적인 해결책만으로 이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는 척을 할 수 있습니까?"라며 "지금 우리 집이 불타고 있으니 행동하라"고 전 세계를 향해 기후위기에 대한 행동변화를 촉구하여 기성세대들에게 일침을 가한 일화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08년 UN은 기후변화가 인권침해에 영향을 끼친다는 기후위기와 신종감염병을 예측하는 발표를 한 바 있다. 그리고 국제사회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을 억제하는 방안을 논의해 왔는데, 2010년 칸쿤 합의에서는 산업화 이전 대비 2℃ 억제 목표를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2015년 UN 기후변화 회의에서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세계 기후변화협약인 파리기후변화협약(Paris Agreement))을 채택했는데 이 협약은 지구온난화에 대응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2018년에는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지구 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하로 억제해야 한다는 장기목표를 두고 이를 위해선 2020년부터 우리나라를 포함한 모든 국가가 2050년까지 전 지구적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해야만 한다. 인권학자 조효제 교수는 “기후변화가 인권침해에 영향을 끼친다”는 UN 발표에 큰 충격과 지적 호기심으로 기후위기 문제와 인권 간의 상관관계를 파헤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저서 “탄소 사회의 종말”은 과학적 패러다임이나 기술관료적 목표 달성 논리를 넘어, 모든 시민의 민주적 참여를 통한 탈탄소 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역설하고 인권 담론과 사회학적 상상력이 전환을 위한 렌즈를 제공한다는 견해다. 21세기 인권의 출발은 ‘자연 대 인간 간의 권리’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한다. 또한 인류는 ‘찢어지기 쉬운 포장지 같은 얇은 막’(브루노 라튀드), ‘지구의 피부점막’(스가 케이지로)에 불과한 좁은 생물권(动物圈, Biosphere) 안에서 여러 다양한 생물들과 함께 사는 존재라는 것이다. 자료에 의하면, 지구의 생물권은 공기 상층부와 지구의 맨틀(mantle) 사이에 존재하는 물-바다, 대지-토양으로 그 두께는 19km에 불과하고 지구 부피로서는 지구 지름의 0.15%에 불과하다. 한 마디로 얇고도 약해빠진 지구의 피부에서 80억의 인구가 그 피부가 골병드는지도 모르고 살아온 것이 기후위기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미 UN인권위에서는 “기후변화는 21세기 인권의 가장 큰 위협이다”(2015년 메리 로빈슨 인권최고대표), “인권의 3중 위협은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상실 및 공해와 독성물질이다”(2021년 미첼 바첼레트 인권최고대표)라고 잇달아 밝히며, 2022년에는 “건강한 환경은 보편인권”이라는 유엔총회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후 2023년 1월 우리나라에서도 국가인권위가 나서서 “기후위기는 생명권, 식량권, 건강권, 주거권 등 광범위하게 인권에 영향을 미치므로, 기후위기를 인권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대응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결정을 내려 늦은 감이 있지만 역사적 결정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 세계 대부분 지역의 수은주가 기록적으로 오르고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위기 경고가 잇따르면서 유럽기후변화연구소는 12만 5천 년 전 마지막 간빙기 이후 2023년 가장 더운 1년을 보냈고 지구 온도 10달째 연속 최고치를 기록해 ‘미지의 재앙’을 맞이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렇듯 최근 몇 년 사이 언론매체의 헤드라인 “브라질 남동부 지역에선 최근 체감온도 섭씨 62도의 폭염에 이어 하루에 300㎜ 넘는 폭우, ‘우리나라의 대형 산불을 비롯 서울 7배 면적의 미국 텍사스 산불, 하와이도 산불로 100명 사망 등 메카톤급 산불 기승, 기상이변 엘리뇨 영향으로 농작물 가격 폭등...‘기후플레이션’, 더워지는 지구에 남극 기온 38.5도 상승...빙하가 역대 규모로 녹는 ‘전례 없는 일’, 브라질·페루 등 남미 전역 뎅기열 확산...‘환자 수 사상 최대’”에서 보듯 볼커 튀르크 현 인권최고대표는 "경고가 현실이 되고 있다"면서 "기후변화로 가정과 삶이 파괴되고 디스토피아적 미래는 이미 다가왔다"고 우려했다. 그동안 기후위기, 생태계의 변화 등이 과다한 탄소배출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인권과 연계시켜 생각하면 산업화에 의한 기계화, 각종 전쟁 등으로 인한 산림의 초토화, 고의적인 생태계의 파괴(댐을 폭파하는 등) 등은 인권파괴와 연계하여 분석해야 할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국내외 언론에 낙후된 구도심이 활성화되면서 사람들과 돈이 몰리고, 결과적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뜻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 서울의 종로구 서촌과 북촌일대, 성동구 성수동, 마포구 홍대근처, 강남구 가로수길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원인을 기후변화에서 찾는 ‘기후 젠트리피케이션(Climate Gentrification)’이라는 말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 위기 지역에 있는 부자들이 안전한 고지대로 대거 이동함으로써 원주민들이 해수면 위기 지역으로 내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실제 최근 미국 플로리다주 남쪽 마이애미시 해안가에서 이 현상이 일어났고 이 현상이 일어날 확룰이 높은 도시는 세계적으로 홍콩, 뉴욕, 방콕 같은 항구 대도시들이다. 해수면 위기가 현실화되고 지구 평균온도가 최악으로 치달으면 최대 4도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보고서가 있어 우리의 부산이나 포항 같은 항구 도시들 역시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얼마 전 감사원이 기후위기로 인한 폭우에 대비해 방재시설을 확충하지 않을 경우 경기 시흥 도심지역 침수면적이 74만6000㎡(약 22만5665평)에 달하고 강원도 화천 소재 평화의댐 등 전국 곳곳의 댐에선 저수량 한도를 넘어 물이 넘쳐흐르는 월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기후위기 적응 및 대응실태’ 감사 결과를 관련 부처에 통보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만큼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빈부격차에 다른 세계 80억인구 중 최상위 계층 10%가 전체 탄소배출의 절반 이상이고 50%인 가난한 사람의 탄소배출은 7%에 불가하며 나라별로는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 일본 등 순이고 우리나라는 9위의 배출국이다. 또한 사치형 탄소배출이 70% 이상이다. 따라서 오늘날 기후위기는 소득이 높은 계층, 잘사는 나라에 더 큰 책임이 있기에 기후 위기의 해결책은 기후위기 취약계층의 불이익과 경제·사회적 취약계층 그리고 장애인 등의 사회복지를 포함한 정의와 평등의 관점에서 찾아야 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 온난화(warming) 시대가 끝나고 지구 열대화(boiling) 시대가 시작됐다”면서 “현재 기후변화 현상이 진행 중이고, 공포스러운 상황”이라며 “이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세계 인구 수백만 명에 영향을 미친 극심한 날씨는 안타깝게도 기후변화의 냉혹한 현실이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또한 기후위기 시대에 인권의 바비블인 세계인권선언 28조 의미가 크게 부각되고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기후변화의 원인을 규명하고 저감하려는 노력과 함께 기후위기를 인권의 문제로 접근하여 대응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도 국가유산을 잘 보존하고 관리해서 미래세대에게 물려주듯 그 역할에 더욱 충실하고 적극 동참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제가 어른이 됐을 땐 지구가 너무 더워질 지 모른 되요. 바다엔 물고기가 없고 하늘엔 새들이 없을 지도 모른 되요. 어떡하죠? (중략) 에너지야, 지구를 부탁해!’라는 2년 전 모 라디오방송 공익 광고가 문득 떠오른다.   김철홍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