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 경제 짓누른 고물가·고환율·고금리, 해결책 마련 화급

2025-04-22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박근종

매일일보  |  이스라엘이 지난 4월 19일(현지 시각) 이란에 대한 재보복 공격을 감행했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만류를 뿌리치고 ‘호세인 아미르 압돌라히안’ 이란 외무부장관의 경고가 나온 지 수 시간 뒤 이란 중부 이스파한을 타격한 것이다. 이에 대한 이란이 대응에 나선다면 보복의 악순환이 이어지며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커졌다. 이처럼 중동 정세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 상황으로 치닫자, 세계의 환율·주식 시장이 출렁이고 국제 유가도 급등했다. 

중동에 짙게 드리운 전운이 국내 금융시장은 물론 국제 유가까지 들썩이게 하면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가뜩이나 중국산 저가 공세에 한국 제조업의 고전이 심화하는 양상이어서 그 충격은 배가 되고 있다.  우리 증시는 장중 3%나 급락하며 롤러코스터를 탄 끝에 1.6% 하락으로 마감했고, 일본 증시 역시 오전 한때 3.5% 안팎까지 급락하고 주변국 증시도 전반적으로 약세를 면치 못하면서 ‘검은 금요일’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서울 외환시장의 원·달러 환율은 이스라엘 공격 소식에 1,392.9원까지 치솟았으나, 외환 당국의 적극적 개입 등으로 안정을 찾아 전일과 비슷한 1,381원 선으로 마감했다. 국제 유가도 한때 3%대 급등을 보이다, 상승 폭을 줄였다. 한국은행이 지난 4월 19일 발표한‘2024년 1분기 대출행태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국내 은행이 예상한 2분기 신용위험지수(종합)는 37로, 1분기(32)보다 5포인트 높아졌다. 특히, 가계신용위험지수 역시 올라가고 있다. 이번 분기(4~6월) 전망지수는 39로 지난해 1분기 이후 가장 높다. 가계의 빚상환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여서 가계부채와 소비 여력 문제가 다시 부각할 조짐이 있다. 2분기(4~6월) 국내 은행의 대출 태도는 기업, 가계주택은 다소 완화, 가계 일반은 다소 강화 수준으로 전망됐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은 주말 정황을 계속 지켜보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전체적으로 국제 경제 여건이 살얼음판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선 금리 인하를 바라는 시장 기대와 달리 인상 전망까지 나온다. ‘래리 서머스(Larry Summers)’ 전 미국 재무장관은 최근 블룸버그TV에 출연해 “다음 연준(Fed)의 조치는 ‘금리 인하’가 아닌 ‘금리 인상’일 가능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라며 “인상 가능성은 15~25%”라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지난 4월 15일(현지 시각) “세계적 투자은행 UBS가 미국 연준은 금리 인하가 아니라 인상을 해야 하며, 미국의 기준금리가 내년에 6.5%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예상했다”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미국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연 7%(30년 고정치 평균)대로 뛰어올랐다. 무엇보다도 한국 경제는 고물가·고환율·고금리란 ‘신(新) 3고(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런 판에 국내에선 여소야대로 끝난 총선 후유증마냥 날로 ‘정치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동 리스크는 유가 압력을 다시금 옥죄고 있다. 총선 리스크에 고유가까지 겹치며 한국 경제의 인플레이션 파고는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1,400원을 터치한 고환율 시대는 물가의 복병으로 작용할 게 선연하다. 미국에서는 기준금리 인하 대신에 더 높은 수준에서 장기간 유지되는(Higher for longer) 상황이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의 ‘제롬 파월(Jerome Powell)’ 의장도 입장을 바꿨다. “(금리 인하란) 더 큰 확신을 갖기까지 멀지 않았다(Not far)”라고 말했던 그는 지난 4월 16일 “인플레이션이 2%로 낮아진다는 더 큰 확신에 이르기까지 기존 기대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다”고 밝혔다. 미국 경제가 견조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3달간 물가 지표마저 예상을 크게 웃돌면서 파월 의장도 매파적(통화긴축 선호)으로 기존 정책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해석된다.  돌이켜보면 트리플(Triple) ‘3고(高)’의 시작은 ‘코로나 팬데믹’일 수 있겠지만 모든 기도문은 한 단어에서 시작하고 모든 여행은 한 걸음에서 출발하듯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이 구호에서 출발한다. 시계를 돌려 8년 전인 2016년 11월 8일 밤 “미국 최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앞세운 제45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의 등장에서 시시작됐다. “미국 물건을 사라, 그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Buy American and Hire American).”의 영향이 크다.  이어서 2021년 4월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이 취임 3개월 만에 연 ‘반도체 대응 최고경영자(CEO) 화상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웨이퍼를 집어 들며 반도체를 미국 기반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하고 그 중심에 한국(삼성전자)과 대만(TSMC)이 있었다. 미국 기반 사업으로 키우려면 반도체 강국인 한국과 대만의 협조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도 대만도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을 잇따라 발표하며 전 세계 설비 투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그결과 미국 경제의 ‘나 홀로 호황’의 광속 질주에 따른 달러화 강세가 계속되면서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금융시장이 롤러코스터(Roller coaster)를 타듯 요동치고 있다. 원화값이 힘을 잃고 있는 것은 ‘강(强)달러’를 넘어 ‘킹(King)달러’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달러가 초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미국에서는 미국 경제가 성장세를 지속하는 ‘노랜딩(No landing·무착륙)’ 시나리오가 힘을 받는다. 무엇보다 미국발 ‘폴리코노미(Politics+Economy)’는 북미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국제 통상 질서는 물론, 기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규범(Norm) 형성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이 폭발적으로 광범위하다. 정치가 경제를 좌우하는 ‘폴리코노미의 습격’이다.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다. 우리나라는 제22대 국회의원 총선이 끝났다. 여소야대로 그 어느 때보다 협치가 필요한 때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간 영수 회담이 계획되어 있다. 우선 소통의 물꼬가 트인 것이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으나 반길 일이다. 현 시점의 최대 현안은 민생문제로 물가부터 잡는 일이다. 첫술에 배부를리 없겠지만 국민의 기대와 여망은 실로 크다. 우선 물가는 통계청이 지난 4월 2일 발표한 ‘2024년 3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2024년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3.94(2020=100)로 전월 대비 0.1%, 전년 동월 대비 3.1% 각각 상승하여 여전히 3%대의 고물가가 지속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난 2월 한국의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물가 상승률은 6.95%로 OECD 평균 5.32%를 웃돌았다. 한국의 먹거리 물가가 OECD 평균을 넘어선 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지난 2021년 11월 이후 2년 3개월 만이다.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등 먹거리 물가 상승세는 다른 OECD 회원국보다 상대적으로 가파를 뿐만 아니라 35개 회원국 가운데 튀르키예, 아이슬란드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다음 금리는 한국은행이 지난 4월 12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높은 물가 수준과 환율 변동성, 지정학적 위험을 이유로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3.50%로 유지한다고 밝히고 하반기 금리 인하도 속단하기 어렵다며 10차례 연속 동결했다. 이로써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5.25∼5.50%)보다 상단 기준 2.0%포인트 차로 역대 최대 수준으로 낮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지금 인플레이션(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1%인데 2%대 중반 이하로 하반기에 내려갈지 확인해야 한다. ‘깜빡이’를 얘기하려면 한두 달은 최소한 (경제 상황을) 더 봐야 한다”하고 설명했다. 또한 환율은 지난 4월 16일 오전 11시 30분께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00원을 기록했다가 4월 19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9.3원 오른 1382.2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이는 지난해 말 종가보다 7.3% 상승했는데 연초 석 달 동안 7%를 뛰어넘는 급등세를 보인 것으로 금융위기 당시인 지난 2008년과 2009년에도 같은 기간 각각 6.9%, 5.8%씩 상승했을 뿐이고 외환위기 사태가 불거진 1997년에 IMP에 자금 지원을 요청한 이후 환율이 달러당 1,000원 선에서 연말 2,000원 부근으로 단기 폭등한 것으로 고려하면 외환위기 사태 이후 최대 상승 폭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유가는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이번 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L당 1695.1원으로 전주보다 21.8원 올랐다. 일간 기준으로는 지난 4월 18일 1701.69원을 기록해 5개월여 만에 1,700원대에 진입했다. 지난 4월 17일 한국은행 국제투자대조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비금융기업(기업)의 대외채무는 1,626억 1,200만 달러(약 226조 6,000억 원)로 집계됐다. 더구나 국가채무가 1,127조 원에 달하면서 국내총생산(GDP)의 50%를 넘어섰다는 2023년 정부 결산이 나온 게 바로 지난주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자 복합적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다만 미국 등과의 통화스와프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창용 총재는“우리만 환율이 절하되고 하면 도움 되는 것은 맞지만 전 세계적으로 환율이 변할 때 (통화스와프를 우리만) 받아봤자 소용도 없고 얘기할 조건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4월 7일 발간한 ‘경제동향 4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내수 회복이 지체되고 있으나 수출이 IT 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증가하면서 경기 부진이 완화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장단기 금리 격차가 축소되거나 역전이 되면 통상 경기 둔화 가능성이 커지는 것인데, 최근에는 과거에 비교해 통화정책의 효과가 커지고 물가와 유동성도 강한 흐름을 보이기 때문에 장단기 금리 역전의 설명력이 약화하는 모습이다.  지난달 로이터통신이 채권시장 전문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34명 중 64.7%인 22명이 수익률 곡선의 경기 예측력이 예전만 못하다고 응답했다. 앞으로 한국 경제는 소비 회복세가 완만한 가운데 IT경기 호조 등에 힘입어 수출 증가세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성장률은 한국은행이 밝힌 지난 2월 전망치 2.1%에 부합하거나 상회할 가능성이 보인다. 지난 4월 17일 기획재정부는 전날 IMF가 발표한 ‘4월 세계경제전망’에서 한국의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를 2.3%로 제시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향후 성장 경로는 주요국의 통화정책, IT 경기 개선 속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구조조정 등에 영향받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동시다발적 지정학 위기에 맞서 안보를 튼튼히 하고, 시장 불안을 가라앉게 하려면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물가 및 금융시장 안정, 투자 활성화 등 경제 회복을 위한 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만 한다. 금융권은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 금융안정과 성장 측면의 리스크, 가계부채 증가 추이, 주요국 통화정책 운용의 차별화 및 지정학적 리스크의 전개 양상을 면밀히 점검하고 고물가·고금리 부담을 막을 민생 안전망을 강화하고 수출과 내수 회복을 위한 해결대책 마련이 화급하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