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기업대출 건전성 비상…가계 대신 늘렸다가 ‘연체율 악화일로’

시중은행 가계대출 영업 규제에 기업고객 유치 사활 3월 기업대출 10.4조 급증...은행들 "어쩔 도리 없다"

2025-04-22     이광표 기자
가계대출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옥죄기에 은행이 기업대출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가계대출 1조6000억원이 줄어들 때, 기업대출은 10조4000억원 증가했다. 다만 일각에선 기업대출 급증이 은행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내수부진으로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 대출 중심으로 부실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 기업대출은 10조4000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3월 증가폭(5조9000만원)의 두 배 가까운 수준이다. 3월 기준으로 역대 두 번째로 큰 수준이다. 가장 높았던 때는 2020년 3월로 증가폭은 18조7000억원이다. 은행권 기업대출 잔액은 1272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 기업대출은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는 감소세를 보이다가, 이후 반등하는 추세다. △2023년 10월 8조1000억원 △11월 7조3000억원 △12월 -5조9000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이후 △1월 6조7000억원 △2월 8조원으로 늘고 있다. 한국은행은 은행 기업대출 급증에 대해 “은행들의 기업대출 확대 전략과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맞물리면서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풀이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출의 지난달 증가폭은 각각 4조1000억원과 6조2000억원이었다. 모두 지난 2월 증가폭인 3조3000억원, 4조7000억원보다 늘었다. 대기업 대출은 분기말 재무비율 관리를 위한 일시 상환에도, 일부 대기업의 시설자금 수요 등으로 증가폭이 커졌다. 중소기업 대출 역시 은행권의 대출영업 강화, 중소법인의 법인세 납부 수요 등으로 증가폭이 확대됐다. 반면 가계대출은 1년 만에 증가세가 꺾였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잔액은 전달 대비 1조6000억원 줄어든 1098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한은은 “주담대는 주택도시기금 정책대출이 자체재원으로 공급된 데다 전세자금 수요도 감소하면서 증가폭이 크게 줄었다”면서 “기타대출은 신용대출 상환 지속, 분기말 부실채권 매·상각 등으로 전월에 이어 상당폭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시중은행들은 가계대출 규제 강화로 공격적 영업이 힘들어지자, 그에 대한 ‘풍선효과’로 기업대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부 은행들은 직원 실적 평가 기준인 KPI(핵심성과지표)에 기업대출 부분을 포함하며 기업고객 유치를 압박하고 있다는 후문까지 나온다. 이에 5대 시중은행이 이달 말 올 1분기 경영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기업대출 잔액도 큰 폭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은행은 지난해부터 기업금융을 미래 먹거리로 삼고 공격적인 영업에 나섰는데 고객·대출 성장세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5대 은행으로만 한정해도 기업대출금 규모가 759조8869억원에 이른다. 2022년 12월 말 698조3115억원에서 지난해 3월 말 708조8293억원으로 700조원을 돌파한 뒤 매 분기마다 꾸준한 증가세가 이어졌다. 지난해말 은행별 기업대출 잔액은 △국민은행 167조7576억원 △하나은행 157조9175억원 △신한은행 155조6658억원 △우리은행 142조5457억원 △농협은행 136조2억원 순이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가 가계대출을 억제하는 분위기인데다, 오는 7월부터는 스트레스 DSR 2단계 적용으로 스트레스 금리 반영 비율이 50%로 늘어난다. 대출 한도 축소 폭이 더 커진다”면서 “앞으로도 당분간 은행 입장에서는 기업대출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문제는 기업대출 급증이 불러올 건전성 우려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 대출 중심으로 부실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당장 기업대출 부문에서 치열한 경쟁에 휩쓸려 무리한 영업이 이어질 경우 향후 부실 자산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장에선 중소기업 대출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은행권 기업대출 잔액의 70~80%대를 차지할 만큼 핵심 고객으로 꼽히지만, 상대적으로 경기 민감도가 높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대출 운용에 따라 기업대출 건전성 지표가 요동칠 수 있는 구조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1월 말 국내 은행의 연체율은 0.50%로 전월 말(0.41%) 대비 0.09%p 상승했다. 대기업 대출 연체율은 1월 말 0.12%로 전월과 같았는데, 중소기업 대출은 지난해 12월 말 0.48%에서 0.60%로 0.12%p 치솟았다. 중소기업 대출 가운데 중소법인 연체율은 1월 말 0.62%를 기록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기업대출이 늘어나고 있는 건 맞지만 과도하게 무게중심이 쏠리진 않을 것”이라며 “중소기업이 걱정된다는 말도 있는데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 실행된 대출이고, 은행도 충분한 손실 흡수력을 갖추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