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도 인플레…2등급도 은행 대출문턱 못넘어
950점 넘는 초고신용자 1315만명
‘신용사면’ 영향에 신용점수 줄상향
은행들 변별력 위해 심사 강화 기조
2025-04-23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시중은행 대출 문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개인 신용점수 900점 이상의 고신용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이제는 웬만한 고신용자도 은행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실정이 됐다. 950점이 넘는 초고신용자의 비중도 전체의 27%에 달하면서 최근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자 평균 점수는 모두 900점대로 나타났다.
20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 2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이 신규 취급한 일반 신용대출의 평균 신용점수는 927.6점이었다. 지난해 11월(918.4점)과 비교해 3개월 만에 9.2점이나 올랐다.
인터넷전문은행도 비슷하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토스뱅크 등 인터넷은행 3사가 지난 2월 신규 취급한 일반 신용대출의 평균 신용점수는 906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1월(866점) 대비 40점이나 올랐다.
1년 전만 해도 신용대출 차주의 평균 점수가 800점대인 은행도 있었지만, 최근엔 5대 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 모두 평균 900점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 은행에서 나간 신용대출의 평균 신용점수는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다. 8개 은행의 일반 신용대출 평균 신용점수는 지난해 12월까지 898.8점으로 800점대를 유지하다 올해 1월 904.1점으로 900점을 돌파했고, 이후 2월 916.8점으로 올랐다.
은행 대출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가 올라간 것은 금융 이용자들의 신용점수가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이른바 ‘신용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지난해 말 KCB 신용점수별 인원 비중을 보면 전체 4953만 3733명 가운데 43.4%(2149만 3046명)가 900점이 넘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950점이 넘는 초고신용자도 1315만명에 달했다.
5년 전인 2019년 말과 비교해 900점대 신용자는 427만여명, 비중은 7.1% 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중금리 대출 우대가 적용되는 하위 50% 기준도 860점 이하에서 이달부터 865점 이하로 상향 조정됐다.
고신용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개인이 쉽게 신용점수를 올릴 방법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신용평가업계는 입을 모은다. 정부는 통신비, 국민연금 납부 내역 등 비금융 정보를 신용점수를 올리는 데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더해 코로나19 이후 두 차례의 ‘신용사면’을 통해 약 520만명이 신용 혜택을 본 것도 평균 점수를 올리는 데 영향을 줬다.
대출 문턱이 높아진 것은 은행들이 연체율 관리 차원에서 고신용자 위주로 대출을 취급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경기침체, 고금리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2022년 6월 0.20%를 기록한 후 상승 추세다. 지난 1월 말 연체율은 0.45%로 전월 말(0.38%)보다 0.07%p(포인트) 상승했다. 전년 동기(0.31%) 대비로는 0.14%p 올랐다.
다만 신용점수가 높아졌다고 해서 실제 신용도가 더 좋아졌다고 보긴 어렵다. KCB 신용점수별 불량률(향후 1년 내 90일 이상 장기연체가 발생할 가능성)을 보면 2018년 말 900점대 차주의 불량률은 0.11%에서 2022년 말 0.19%로 5년 사이 0.08% 포인트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전체 불량률 역시 1.42%에서 1.50%로 0.08% 포인트 증가했다. 즉 점수는 올랐지만 실제 신용도는 더 떨어진 것이다.
결국 은행에 고신용자들이 몰리면서 은행들은 차주들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심사를 더 까다롭게 할 수밖에 없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리가 높고 금방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다 보니 이자상환 능력이 낮은 중저신용자들이 고신용자들보다 대출을 덜 받아가는 상황"이라며 "KCB 점수가 전반적으로 상향평준화된 것도 원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