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에 불어나는 부실채권…1년 이상 못 갚은 은행빚 2조 육박
4대 은행 추정손실 1년 새 50% 껑충...역대 최대 증가 취약 기업·가계 급증에 연체율 오르고 회수 포기까지
2024-04-24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은행권이 대출을 내주고 회수를 포기한 채권이 1년 새 50%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기업대출을 통한 부실화가 급격히 진행된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기업 10곳 중 4곳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충당하지 못하는 ‘취약기업’ 상태에 놓인 영향이 컸다.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경기 부진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이 맞물리면서 은행이 기업에 빌려준 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일각에선 은행들이 선제적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충당금 적립을 늘리기 위해 보수적으로 여신 분류에 나선 것으로도 분석한다. 회수가 어려운 채권에 대해선 충당금을 더 높게 쌓을 수 있다. 은행들의 경영 전략 일환인 것이다. 문제는 국내 4대 은행 대출의 질이 전반적으로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2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이 내준 대출에서 발생한 추정손실액은 6541억원으로 전년 동기(4335억원) 보다 50.8%(2206억원)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은행별 증가율을 보면 국민은행의 증가폭이 가장 컸다. 국민은행은 지난 2022년 865억원에서 지난해 1801억원으로 108%(936억원)나 폭증했다. 이어 같은 기간 우리은행이 890억원에서 1,680억원으로 88.7% 증가했다.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은 각각 40.5%, 2% 늘었다. 추정손실은 회수가 불가능한 상태에 빠진 여신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금융사들은 빌려준 돈인 여신을 건전성에 따라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5단계로 나눈다. 중간 단계인 고정은 연체 기간이 3개월 이상인 여신이다. 통상 ‘고정 이하 여신’을 부실채권(NPL)으로 분류한다. 건전성이 가장 낮은 단계인 추정손실은 채무상환능력의 악화로 회수불능이 확실해 손실처리가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되는 채권이다. 은행이 사실상 돌려받기를 포기한 빚의 규모로 볼 수 있다. 금융그룹 단위로 범위를 확대하면 부실규모는 더 크다. 은행들의 상위사인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개 금융이 보유하고 있는 여신 중 추정손실로 분류된 액수는 1조966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9%나 증가했다. 금융지주별로 보면 신한금융은 7514억원으로 전년(5759억원)보다 30.5% 늘었다. 같은 기간 우리금융의 추정손실 규모는 2980억원에서 4790억원으로 60.7% 급증했다. 이어 KB금융은 2123억원에서 3926억원으로 하나금융은 2350억원에서 3430억원으로 각각 84.9%, 46.0%씩 증가했다. 세부적으로 KB금융의 추정손실 규모는 2123억원에서 3926억원으로 84.9% 늘었다. 4대 금융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같은 기간 신한금융의 추정손실 규모는 5759억원에서 7514억원으로 30.5% 불었다. 하나금융은 2350억원에서 3430억원으로 46.0% 증가했고, 우리금융은 2980억원에서 4790억원으로 60.7% 늘었다. 지난해 연간 추정손실이 가파르게 상승한 배경은 국내외 경기 둔화와 더불어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연체율 상승이다. 추정손실 여신 급증은 금융사의 건전성 훼손 우려뿐만 아니라 실적 악화로 이어진다. 이에 4대 금융은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대손충당금을 8조9934억원 규모로 적립했다. 이는 전년(5조2079억원)보다 72.7% 늘어난 규모다. 이에 4대 금융의 대손비용률은 평균치는 2022년 0.33%에서 지난해 0.54%로 1년새 0.21%포인트 올랐다. 대손비용률은 금융사의 자산건전성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 대손비용을 총여신 평잔으로 나눠 구하는데 대손비용률이 낮을수록 손실흡수능력과 자산건전성이 긍정적인 상태로 평가된다. 문제는 기업부실화에 따른 향후 ‘부실리스크’ 전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작년 4분기 말 기업신용 규모는 총 2780조1000억원으로 3분기 2734조7000억원 대비 1.7% 증가했다. 명목 GDP 대비 기업신용 비율은 124.3%로 나타났다. 한국에서 한 해 동안 생산되는 모든 부가가치를 더해도 기업의 빚을 갚을 수 없다는 의미다. 이 가운데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이자비용) 1 미만 취약기업 비중은 작년 3분기 말 기준 44%에 달했다. 2022년 말 37%에 비해 7%포인트 뛰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자 감면 등의 정부 대책이 잇따르고 있지만 경기 상황과 기업 경영 개선세가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며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연체율이나 부실채권 비율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은행 부실채권이 늘어나면 거시 건전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상당한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일차적으로 대손충당금을 많이 확보해 부실채권의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