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숨죽인 채 건설사 옥죄는 덫 '미분양'

2025-04-24     권한일 기자
권한일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바야흐로 꽃과 녹음이 어우러진 봄이다. 분양시장 최고 성수기로 일컫는 계절이지만 최근 민간 청약 결과를 보면 현실은 말 그대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청약을 개시한 열에 예닐곱 곳은 모집 인원을 채우지 못했고, 그중 절반 이상은 청약률이 10~20%에 그쳤다.

가라앉은 시장 상황상 업체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청약 공고를 낸다곤 하지만, 막상 결과가 바닥을 치고 나면 분위기는 심각해진다. 원도급사와 발주처, 분양업체는 늦어도 준공 전에 미분양분을 털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태세로 전환한다. 준공 후 미분양이 불러오는 후폭풍은 가히 치명적이다. 대표적인 수주 산업인 주택 건설업의 회계 처리 구조를 들여다보면 준공 시점까지 미분양으로 남은 현장 한두 곳이 회사를 송두리째 집어삼키는 괴물로 돌변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착공 후 준공까지 몇 년이 소요되는 도급공사는 공정 진행률에 따라 매출과 투입 원가, 공사 이익을 손익계산서에 반영한다. 이 과정에서 미분양이 많건 적건 공사비 미회수에 관한 내용은 분기·반기·연간 손익계산서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또 기존 상당수 주택 도급사업은 시공사가 공사비를 마련한 뒤, 분양금으로 공사비를 충당하는 '분양불'로 체결됐다는 점은 최근 터지는 미분양이 향후 건설사의 발목을 잡는 날선 덫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통상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시행사가 추진하는 주택·오피스텔 사업에서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브랜드가 널리 알려진 시공사가 나서서 유사시에 PF유동화증권을 매입해 주겠다고 약정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예상치 못한 부동산 경기 침체와 분양 참패는 결국 차환 실패로 직결될 수 있다. 전반적인 분양 결과가 양호하더라도 분양불 또는 유동화증권 매입 약정이 있는 현장 한두 곳에서 대형 미분양이 발생하면 건설사가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지만 건설사들은 여전히 매출·영업이익·당기순이익 위주로 실적을 내보이고 있다. 그 안에서 미분양 등 사업 부진으로 발생한 우발채무와 약정 차입으로 곪아 터지고 있는 지표는 외부는 물론 회사 내에서도 굳이 공론화하지 않는다.  작년 말 돌연 워크아웃을 신청한 태영건설도 불과 두 달 전인 3분기까지 누적 매출 2조3891억원, 영업이익 977억원, 당기순익 763억원 등 전년보다 급증한 실적을 내놓은 바 있다. 태영보다 앞서 워크아웃 또는 최종 부도 처리된 중대형 건설사들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최근 정부가 부랴부랴 CR리츠나 LH매입 카드를 꺼냈지만 미분양이 속절없이 터지는 시국에서 어느 정도 효과를 볼지 의문이다. 당면한 건설사들은 주변에 미분양 덫이 널린 상황에서 차포(車包) 다 붙은 고분양가만 고집할 게 아니라, 실효성 있는 자구책을 내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