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계·자영업자 은행연체율 최고치, 채무조정 활성화 유도해야
2025-04-26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매일일보 | 우리 경제의 고금리 상황이 장기화로 이어지면서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은행권의 원화 대출 연체율이 0.51%를 기록하며 2019년 5월의 0.51%와 같은 기록 이래 4년 9개월 만의 최고치로 치솟았다. 가계대출에선 신용대출, 기업 대출에선 중소기업 대출의 연체율이 가파르게 치솟아 오르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금리가 크게 오른데다 설상가상 경기 후퇴의 영향을 받아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취약층이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빚을 늘려줘 시간을 벌게 해주는 것보다는 채무조정의 활성화를 유도해야 한다. 가계 소득이 늘고, 이로 인해 소비가 늘어 침체한 내수 경기가 호전될 수 있게 정부의 정책 대응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4월 24일 발표한 ‘2024. 2월 말 국내 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 현황[잠정]’에 따르면 올해 2월 말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비율)은 전월 말 0.45% 대비 0.06%포인트, 전년 동월 말 0.36% 대비 0.15%포인트 각각 상승한 0.51%로 집계됐다. 2019년 2월의 0.52%에 이은 2019년 5월 0.51% 이후 최고치다. 기업 대출 연체율은 0.59%로 전월 말 0.50% 대비 0.09%포인트 전년 동월 말 0.39% 대비 0.20%포인트 각각 상승했는데 그중에서도 중소기업 대출의 연체율이 0.70%까지 치솟았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0.42%로 전월말 0.38% 대비 0.04%포인트, 전년 동월 말 0.32% 대비 0.10%포인트 각각 상승했는데,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은 0.27%로 다소 안정적이지만,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의 연체율은 1월 0.74%에서 2월 0.84%까지 한 달 새 0.1%포인트나 치솟았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위기에 취약한 중소기업과 서민이 자주 이용하는 중소기업대출(0.70%)과 신용대출(0.84%)의 연체율이 특히 높아 금융 당국의 관심과 주의가 요구된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머지않아 곧 올 것처럼 예상됐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점점 불확실성을 더해가고 있다. ‘킹 달러’의 고환율이 장기화하고, 중동전의 위기 고조로 인한 고유가 지속으로 물가 인상 요인이 커지고 미국의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되면서다. 현재 3.5%인 기준금리는 2000년대 초와 비교할 때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가계와 자영업자의 체감은 크게 다르다. 사실상의 제로금리였던 2020~2021년 유동성 파티가 불과 1년 만에 급반전된 데다, 고물가(3월 물가상승률 │ 한국 3.1%, 미국 3.5%)로 실질소득이 감소하면서 여윳돈마저 크게 줄어든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하 시기가 계속 지연되는 만큼, 한계에 몰릴 취약차주 관리가 시급한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한동안 하락세를 이어온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다시 위로 꿈틀대고 있다. 지난 4월 24일 5대 은행 고정형(혼합)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3.38~5.66%로 집계됐다. 농협은행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이 하루 만에 0.49%포인트 껑충 뛰었고, 하단도 0.19%포인트 올라갔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도 지난 4월 23일보다 상단과 하단이 각 0.02%포인트씩 올랐다. 변동형 대출상품 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 │ 자금조달비용지수)가 넉 달 연속 하락했지만, 은행채 금리는 올랐기 때문이다. 거센 외풍에 은행채 금리가 다시 4%대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란·이스라엘 간 군사적 충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하 지연 등이 맞물리면서다. 지난 4월 2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4월 19일 기준 은행채 5년물 수익률은 3.905%로 집계됐다. 이는 이달 초(3.731%) 대비 0.174%포인트 오른 수치다. 은행채 5년물은 일반적으로 고정(혼합)형 주택담보대출의 준거 금리로 활용된다. 그런 만큼 은행채 금리 상승은 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요인이다. 시중금리가 올라가면 가계는 일반적으로 대출을 크게 늘리지 않게 된다. 다행히도 지난해 4분기 기준 1,886조 4,000억 원에 달해 역대 최고를 찍은 가계부채 잔액은 최근 들어 증가세가 다소 둔화했다, 워낙 누적된 가계부채가 많은 상태이기 때문에 채무자들의 이자 부담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연체가 늘어나고 폐업이 속출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그나마 가계부채가 줄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다. 지난 4월 11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4년 3월 중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3월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4조 9,000억 원 감소했다. 지난 2월 1조 9,000억 원에 이어 두 달 연속 감소한 데에 이어 감소 폭도 지난 2월보다 3조 원 정도 크게 확대됐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증가 폭이 크게 줄어들었다. 지난달 전 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은 500억 원 증가했는데 전월 3조 7,000억 원과 비교하면 대폭 줄어들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연체율이 코로나19 이전인 2010∼2019년까지 10년 평균 연체율 0.78%와 비교해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고 하지만 안심하기엔 시기상조다. 현재 우리나라 기준금리 3.50%는 코로나19 직전보다 무려 2%포인트나 높은 금리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칫 돈을 빌리는 이들의 대출 상환 여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정부는 ‘은행 위기는 없을 것’이라고 낙관적 인식을 갖거나 결코 느긋해서는 안 된다. 연체율의 급격한 상승은 많은 가계·중소기업·소상공인이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적색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팽팽한 긴장감을 견지하고 유연한 선제 대응을 해야만 한다. 실제로 제1금융권과 제2금융권의 연체율 상승 문제는 부동산 경기 침체, 내수 부진 등의 복합적 이유로 점차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말 시중 5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무수익여신은 3조 5,207억 원으로 전년도 말(2조 7,901억 원)보다 26.2%나 급증했다. 무수익여신은 제때 이자는 물론, 원금도 갚기 어려운 부실채권으로 흔히 깡통 대출이라 일컫는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많이 해준 새마을금고의 연체율도 지난해 말 5.07%에서 올 1월 6%대, 2월 7%대로 급증 추세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다시 나서기로 할 정도다. 저축은행 연체율도 지난달 6.94%로 전년 말 2.05% 대비 3배 이상 뛰어 일부 저축은행에 대해 자본확충방안을 마련하라고 금융감독원이 요구한 상태다. 통상 은행들은 분기 말에 부실채권을 몰아서 매각하거나 상각 처리한다. 따라서 분기가 끝나는 달에는 연체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연체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는데도 불구하고 연체율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는 것은 여간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시중금리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여왔다. 은행의 연체율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25%에서 1.5%(2017년 11월 30일), 1.75%(2018년 11월 30일)로 올린 뒤 1년가량 0.5%를 웃돈 적이 있었을 뿐, 이후에는 하락세를 이어왔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19 위기 이후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금리 인상과 함께 2022년 말부터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저금리 시기에 민간 부채가 급팽창했던 까닭에, 이번 상승세는 쉬 누그러질 것 같지 않다. 미국 경제의 ‘나 홀로 호황’ 질주로 당분간 기준금리 인하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 경제성장률이 2.5%가량 예상되면서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우려가 작용한데다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 및 인하 폭이 줄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은 고금리 기조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 상정하고, 가계·기업의 부실이 봇물 터지듯 한꺼번에 터져 나오지 않도록 철저하고 선제적 관리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대출의 건전성 관리를 결코 완화해선 안 된다. 취약차주에 대해선 채무조정 활성화를 유도하고 부실채권 상·매각 등을 통한 자산건전성 관리를 강화토록 하는 한편, 대내외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대출 부실 위험에 건전성이 타격받지 않도록 금융기관의 대손충당금 적립을 확대토록 하는 등 손실 흡수능력 확충을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유인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구조조정을 통한 기업의 옥석 가리기도 서둘러야만 할 것이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