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영수회담, 尹 대통령은 '인내'하고 李 대표는 '용기' 내길
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4월 29일,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드디어' 만난다. 윤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고 꼬박 720일 만이다. 실무진을 통한 의제 조율이 지지부진하자 대통령실은 '일단 만나자'고 제안했고,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만나겠다"고 호응하면서 날짜가 잡혔다. 서로의 결단만 있다면 성사될 수 있는 영수회담이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일이었나 싶다.
한쪽(이 대표)의 일방적 요구가 전부였던 영수회담 논의는 범야권이 4·10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급물살을 탔다. 임기가 3년 넘게 남은 윤 대통령은 여당의 총선 참패로 '여소야대' 국면에서 모든 임기를 보내게 됐는데, 이런 상황이 영수회담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해석이다.
그간 야당의 '대화 요구'에도 눈길 한번 주지 않던 대통령이 자신의 의중을 국정에 반영하기 위해선 이제는 야당의 협조 말곤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2년, 정부·여당과 야당이 극한 갈등하며 사실상 멈춰버린 정치를 복원하기 위해선 대화는 꼭 필요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은 나섰다. 만시지탄이라는 비판과 별개로 많은 국민이 영수회담을 추진한 윤 대통령의 행보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다.
영수회담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정치적 이벤트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대립각을 이어온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이번 영수회담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결코 '사진 찍기'에 치우친 영수회담이 되어선 안 된다. 물가 고공행진으로 민생은 어렵고, 의료계 파업에 국민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또 경색된 남북관계로 한반도 정세는 역대급으로 불안정하다. 당장 논의 테이블에 올려야 할 시급 현안만 추려서 대화해도 회담 시간으로 정해진 1시간은 훌쩍 넘을 듯하다.
일각에선 이번 영수회담의 진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도 한다. 윤 대통령은 낮은 지지율과 총선 참패를 극복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영수회담에 나서는 것이고, 이 대표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이에 응했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이 같은 부정론을 불식시키기 위해선 결과가 필요하다. 대다수 국민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두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가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을 넘어 시급한 민생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길 원한다. 그래야만 영수회담을 대하는 두 사람의 진정성도 인정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윤 대통령은 불편한 것도 들을 수 있는 '인내'가, 이 대표는 의료대란 등 민감 현안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